“푸른 목초지와 전나무 숲길”…평창 가을, 쉼과 여유를 걷다
여행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평창을 찾는 이들은 이제 더 깊은 자연, 선명한 계절의 감각에 마음을 둔다.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9월 평창, 들숨마다 청량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엔 소란스러움보다 고요한 여백이 흐른다.
요즘은 대관령양떼목장의 넓은 초지 위를 걷는 사람들이 많다. SNS에서는 푸른 목초지와 양떼 사이에서 찍은 인증 사진이 줄을 잇고 있다. 능선을 따라 산책로를 걸으며 만나는 양들의 순한 눈빛, 해 질 녘 붉은 노을에 물든 목장 풍경 앞에선 누구라도 잠시 말을 잊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머릿속이 가벼워진다”고 한 방문자가 고백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 발표에 따르면 올해 평창 일대 목장과 고원 지대 방문객 수가 전년보다 15% 늘어났다. 코로나 이후 자연 속 소규모 여행 수요가 상승한 영향이다. 특히 육백마지기는 사진 명소로도 입소문을 타 고지대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탁 트인 조망을 즐기려는 이들이 몰린다.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다는 이름부터가 주는 여유로움이 있다며, “한참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평을 남긴 방문자도 많다.
월정사는 오대산 자락의 천년 고찰답게 조용한 산사의 울림을 전한다. 팔각구층석탑과 수백 년 된 전나무 숲길은 걷는 내내 마음을 정화해 주는 명소다. 심리상담가 정은희 씨는 “속도를 늦추고 산사의 풍경이나 숲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이완되고, 나를 돌아보는 힘을 얻는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월정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행자들은 “일상의 번잡함에서 잠시 멀어질 용기를 얻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모처럼 시간을 내서 평창에 다녀왔는데, 풍경이 그대로 휴식이 된다”, “서울 살다 오면 공기부터 다르다”며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마음을 꺼내는 이들이 많았다. 여행, 그 자체가 거창하진 않아도 평창의 자연은 누구에게나 사색의 시간을 건넨다.
이렇게 평창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색과 숨결로 여행자를 맞는다. 깊은 산과 넓은 목초, 오래된 숲길이 기다리는 그 길 위에서,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