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주산지, 커피 향 머문다”…청송 주왕산의 흐린 아침과 숨은 미식
요즘 청송 주왕산 자락 풍경을 느긋이 걷는 이들이 늘고 있다. 화창한 날씨만이 여행의 전부라 여겼지만, 이제 흐린 날의 부드러운 음영과 가라앉은 공기마저 누군가의 하루가 된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달라진 여행과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주왕산의 짙은 산 자락과 계곡이 어우러진 청송군은 16일 오전에도 잔잔한 흐림을 입고 사람들을 맞이했다. 이날 기온은 30도를 넘어 꽤 후덥지근했지만, 북북서풍이 더위를 데려가며 산책길에는 자연스러운 여유로움이 깃든다. SNS에서는 맑은 날 못지않게, 물안개 피어오른 주산지의 새벽풍경이나 신비한 왕버들나무 사진이 일상을 잠시 멈춰 세운다. 누군가의 인증샷에는 “어제보다 오늘이 더 몽환적이었다”는 감상도 덧붙여진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계절 불문하고 청송 주왕산과 주산지를 찾는 여행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현지 주민과 만난 40대 A 씨는 “요즘은 비가 오거나 흐릴 때 오는 분들도 많아요. 산책길도 한적하고, 커피 한 잔 들고 있으면 그냥 시간이 천천히 가는 기분이 듭니다”라며 일상 탈출의 소박한 즐거움을 표현했다.
누군가는 청송의 여유를 찾으려 산길을, 또 누군가는 미식 경험을 좇아 들르기도 한다. 주왕산면 당마을길에 자리한 ‘킴스마운틴커피클래스’는 최근 MZ세대와 여행가 사이에서 입소문난 곳이다. 이곳 대표 김진환 씨는 “세계 특허를 받은 스모크 커피와 족욕 체험을 동시에 하실 수 있죠. 여행 오신 분들이 ‘커피 향이 기억에 남는다’고 표현할 때면 작은 보람이 스며든다”고 고백했다.
사찰 여행을 즐기는 가족 단위 방문객도 보였다. 고즈넉한 대전사 경내에서는 80대 노모와 함께라는 B 씨가 “산사에 있으니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라며, "특별한 날씨가 오히려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느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여행 커뮤니티에는 “맑은 날 주산지도 좋지만, 약간 흐린 날 습기 머금은 왕버들나무가 더 운치 있다”거나 “로스터리 커피와 산책의 조합이 특별하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은 많이 움직이거나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대신, 잠시 ‘멈춰 서는 기분’을 선호하게 됐다.
누군가에겐 작은 변화지만, 주왕산 자락에서 흐린 하늘 아래 걸음을 멈추는 이들은 분명 늘고 있다. 습기와 안개가 만든 미묘한 감성이 삶의 리듬을 깨어낸다. 주산지의 잔잔한 물결, 사찰의 고요, 커피 한 잔의 따스함—청송의 풍경은 오늘도 묵묵히 여행자의 마음을 안아준다.
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