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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신라 천년”…경주, 역사와 일상의 경계가 흐려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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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신라 천년”…경주, 역사와 일상의 경계가 흐려진 하루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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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를 걷는 사람들의 발길이 오늘도 이어진다. 예전엔 역사 여행지라 느껴졌지만, 지금은 우리네 일상 속 여유와 취향을 담는 여행의 상징이 됐다.

 

9월 중순, 흐린 하늘 아래 경주에는 묘한 정적이 감돈다. 낮 기온은 28도를 웃돌고, 높은 습도와 함께 도시 곳곳이 아지랑이처럼 아련하다. 그러나 이런 날씨도 경주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진 않는다. 동궁과 월지, 대릉원, 경주루지월드—누군가는 SNS를 가득 채운 인증샷을 남기고, 누군가는 조용히 역사의 골목을 배회한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경주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경주

특히 동궁과 월지의 밤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지는 순간, 연못 위로 비친 별궁의 그림자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여긴 꼭 한 번 와봐야죠”라는 방문객의 고백이 이어진다. 낮에는 느긋하게 연못을 산책하는 가족과 연인이 많고, 밤에는 사진을 남기려는 여행자들이 카메라를 꺼낸다.

 

경주대릉원에서는 아이들이 푸른 잔디 위를 달리고, 어른들은 고분 사이 산책로에서 신라의 옛 기운을 느낀다. 넓은 공간과 잘 정돈된 산책길, 그리고 둥근 봉분들이 주는 고요함 덕분에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는 감상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웅장한 고분 사이로 난 산책길에서 찍는 사진이 최근 온라인에서 자주 공유된다.

 

이런 변화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지난해 경주는 가족 단위 여행객과 2030 세대 유입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각종 레저 시설과 새로운 체험형 명소들이 꾸준히 등장하면서, 경주는 더 이상 옛 유적지만이 아닌 남녀노소가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자리 잡았다. 경주루지월드의 짜릿한 루지 체험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고 알려졌다.

 

여행 칼럼니스트 정수진은 “경주는 시간의 켜가 겹겹이 쌓인 곳이다. 고궁을 산책하다 출출하면 길 건너 현대식 카페에 들러 쉽고, 역사와 액티비티가 하루에 다 모인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경주를 다녀온 이들은 “생각보다 자유롭고 넉넉하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이라는 반응을 남긴다. SNS에는 “밤에 동궁과 월지 산책 최고”, “대릉원의 사진 맛집 인정” 등 공감 댓글이 줄지어 달린다. 여행이란 누군가에겐 휴식이지만, 누군가에겐 지금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임을 경주는 가르쳐준다.

 

작고 사소한 움직임이지만, 경주에서의 하루는 내 안의 흐르지 않는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든다. 천년의 기억과 현재의 리듬이 무심코 스며드는 여행, 이 변화는 오늘도 누군가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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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동궁과월지#경주대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