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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고습·고조명 삼박자”…러브버그, 수도권 점령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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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고습·고조명 삼박자”…러브버그, 수도권 점령한 배경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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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로 알려진 붉은등우단털파리가 서울·인천 등 수도권 전역에서 대량으로 집단 출현하며 도시 생태계의 예상치 못한 변화를 낳고 있다. 정부와 학계는 이 곤충이 국내 산림과 도심에 동시에 번성하면서, 관련 생활 불편 민원도 폭증하는 현상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2022년 4418건, 2023년 5600건에 이어 지난해엔 9296건의 러브버그 방제 민원이 서울시에 접수됐다. 올해도 계양산, 송파구 석촌호수, 일산 호수공원 등 야외 공간 중심으로 민원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업계와 연구진은 수도권 러브버그 사태를 “도시 기후·생태계 변화의 분기점”으로 해석한다.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Plecia longiforceps)는 북미에서 ‘러브버그’로 유명한 우단털파리(플리시아 니악티카)와 가까운 미기록 외래종이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출현했으며, 2020년대 들어 급증세를 보였다. 외래종 유입의 시작점은 인천 지역으로, 선박 화물 등 국제 교역 과정에서 극소량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곤충은 겨울엔 유충 상태, 6월에 번데기, 6월 말~7월 초 성충으로 나타난다. 성충 수명은 3~7일에 불과하지만 짝짓기를 위해 수백~수천 마리가 집단 비행하며 도시 체감 밀도를 높인다. 암컷 한 마리가 산란하는 알은 400여개에 달해 빠른 번식력도 특징이다.

강한 번식력 외에도, 한국 도심 내 러브버그의 급격한 증가에는 도시열섬 현상(도심의 인공적 온난화)과 함께 기온·습도 상승, 고강도 조명 등 환경이 복합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심과 인근 산지는 고온·고습의 미소기후와 두꺼운 낙엽층(유충 성장에 최적화), 인공조명에서 발생하는 청색광 파장(곤충 유인 효과)까지 삼박자가 겹쳐 러브버그 증식에 우호적 플랫폼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고휘도 백색 LED 조명이 도입된 서울 등지에서 곤충의 ‘도시 유입’을 가속하는 계기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역시 러브버그 급증 피해를 겪은 바 있다. 플로리다대학교 등은 플리시아속 곤충이 차량 열·조명·배기가스 등에 반응해 군집하는 생태적 특성을 확인한 바 있으며, 서울의 여름 기후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도시 조명 설계의 변화 역시 환경 당국과 지자체가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일부 생태복원지에선 장파장(황색·적색) 저조도 조명, ‘풀 커트오프’(빛 각도 제한) 기술 등이 파일럿 도입되고 있다. 이론상 곤충 유입을 줄이기 위한 보조 수단이나, 조명이 적은 곳에서도 러브버그가 포착되는 만큼 실제 효과는 추가 연구가 요구된다. 현재 수도권 방역 당국은 물 분사, 끈끈이 트랩 등 비화학적 방제법에 집중하고 있다. 살충제 사용에는 생태계 교란과 시민 건강 우려 등 사회적 저항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브버그는 차량 부식, 시야 방해 등 다양한 생활 불편을 유발해 시민 불만도 적지 않다.

 

러브버그 급증은 도시 환경이 제공한 고온·고습·고조명 삼박자와 생태학적 우연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토종 생태계의 ‘반격’에도 시선이 쏠린다. 실제로 최근 참새, 까치 등 조류와 거미, 사마귀 등이 러브버그를 포식하는 장면이 보고되고 있다. 과거 외래종 황소개구리 사례처럼, 인공적 방제만이 아니라 토종 생태계 스스로 러브버그의 집단 증식을 제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도시 기후변화와 외래종 확산이 중첩되는 현 상황에서, 수도권 러브버그 문제는 환경·방재·도시설계 등 다양한 산업과 정책 분야에 새로운 교훈을 주고 있다. 산업계는 도시생태계 변화 대응을 넘어, 실제 현장 방제 및 스마트 도시 인프라 설계와 연계될 수 있는 기술·정책적 해법 모색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과 사회, 생태계가 교차하는 접점에서 균형 잡힌 대응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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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수도권#도시열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