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기억을 걷는다”…부여 문화유산 산책이 여행의 풍경을 바꾼다
요즘 부여로 떠나는 여행자가 부쩍 늘었다. 예전엔 평범한 역사 여행지였지만, 지금은 시간의 결을 따라 걷는 나만의 감성 산책 코스가 됐다.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충남 부여.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옛 백제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 느릿한 여행을 찾는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가장 먼저 찾게 되는 명소는 궁남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여름이면 분홍빛 연꽃이 물결치는 풍경을 기대하게 한다. SNS에서는 해 질 무렵 연못가 산책 사진이 줄을 잇고 있다. 그 고요함 덕분에 많은 여행자가 “바쁜 도시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온기를 느꼈다”고 고백한다.

백제문화단지도 가족 단위 방문객과 역사에 관심 많은 20·30대 사이에서 인기다. 실제로 기자가 현장을 찾았더니, 사비궁과 왕릉터를 오가며 지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유독 밝았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 이렇게 다정하게 다가올 줄 몰랐다”는 반응도 인상적이었다.
부소산성은 조금만 숨을 고르면, 성곽 산책로 끝에서 백마강과 부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의 절벽 끝, 낙화암에는 백제의 마지막 이야기가 오롯이 새겨진 듯하다. 정림사지에서는 국보로 지정된 오층석탑 앞에 잠시 멈춰서는 이들이 많다. 누구든 그 비례미에 눈길을 빼앗긴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심리학자 신현주 씨는 “지금의 문화유산 여행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의 감정을 보듬는 시간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었던 유적지를 천천히 걷다 보면 삶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다”고 표현했다.
부여 여행자 커뮤니티에서도 “박물관에서 금동대향로 실물을 마주했을 때, 이 긴 시간 아래 이어진 인연이 묵직하게 다가왔다”는 체험담이 많다. 계절마다 풍경이 다르고, 각 장소가 건네는 이야기 역시 제각각이어서 “이제는 문화유산 투어가 일상의 리프레시 코스가 됐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작고 사소한 산책부터 오래된 왕릉 앞의 침묵까지, 부여를 찾는 발걸음엔 시대를 잇는 감각과 가족과의 추억이 어우러진다. 문화유산 여행이 단지 역사를 마주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리듬을 배우고 나만의 ‘쉼표’를 찾는 동반자가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