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메모리칩 빨아들이고 있다”…글로벌 IT업계, 공급 부족 우려에 가격 인상 압박
현지시각 기준 27일, 미국(USA)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급격히 끌어올리며 내년 메모리칩 공급 부족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전망은 주요 글로벌 IT 기업들의 비축 움직임과 가격 인상 검토로 이어지며, PC·스마트폰을 넘어 각종 전자제품과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에 부담을 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USA)의 델 테크놀로지스(델)와 HP를 비롯한 글로벌 IT 제조사들은 2025년 메모리칩 수급 불안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중국(China) 레노버 그룹 등은 향후 가격 급등에 대비해 메모리 재고를 크게 늘리고 있으며, 대만(Taiwan)의 PC 제조사 에이수스(ASUS)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레노버는 평상시보다 메모리칩 재고를 약 50% 확대했으며, 에이수스 역시 재고 비축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IT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이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내년 2분기까지 메모리 모듈 가격이 최대 50%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는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이 AI 붐과 맞물리며 중장기적인 가격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칩은 데이터 저장을 담당하는 일반 메모리와, HBM(고대역폭 메모리)처럼 AI 연산을 지원하는 고성능 메모리로 크게 나뉜다. 블룸버그는 메모리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AI용 HBM과 관련 제품 생산 비중을 확대하면서, 전통적인 DRAM·낸드 등 일반 메모리 공급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생산 구조 변화가 서버용뿐 아니라 PC·모바일용 메모리 시장까지 동시다발적인 공급 긴축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AI 서버와 컴퓨터를 생산하는 델의 제프 클라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5일 실적 발표 자리에서 메모리칩 비용 상승 속도가 이례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에게 “모든 제품군에 걸쳐 원가 기준이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하며, 메모리 가격 급등이 델 전체 제품 라인업의 비용 구조를 흔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제조사들이 향후 판매가를 조정할 명분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HP 역시 비슷한 위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엔리케 로레스 HP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회사가 내년 하반기를 특히 어려운 시기로 보고 있다며, 필요할 경우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언급했다. HP는 일반 PC 제조원가 가운데 메모리칩이 차지하는 비중을 15∼18% 수준으로 추산하며, 메모리 가격 상승이 곧바로 완제품 가격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했다.
델의 클라크 COO도 메모리 비용 부담을 반영하기 위해 일부 기기 가격 재조정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이런 발언은 PC·노트북·워크스테이션 등 컴퓨팅 기기 전반에서 소비자 가격 상승 가능성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국과 연관 산업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중국(China)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를 비롯한 가전 업체들도 메모리 가격 상승 흐름을 주시하며 판매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루웨이빙 샤오미 그룹 총재는 이달 18일 실적 설명 이후 기자들과 만나 메모리칩 가격이 ‘슈퍼 사이클’ 구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메모리 부족 국면이 과거보다 더 뚜렷하고 장기화할 수 있다고 진단하며, 내년에 스마트폰을 포함한 각종 모바일 기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메모리칩 공급 차질이 PC·스마트폰뿐 아니라 의료 장비,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 장비와 스마트 기기의 제조 비용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커넥티드 의료기기 등도 대규모 메모리를 필요로 하는 만큼, 메모리 가격 급등이 소비자용 전자기기를 넘어 산업용·상업용 제품의 가격 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도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메모리 재고 감소와 공급 차질 우려가 구체화하면서 글로벌 증시에서 메모리 대표 기업들의 주가는 최근 몇 달 사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블룸버그는 한국(Korea)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USA)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주요 메모리칩 제조사들이 수급 개선과 가격 상승 기대를 반영하며 강세를 보여왔다고 분석했다. 메모리 업황을 둘러싼 시장의 평가가 불과 1년여 만에 급변한 셈이다.
미국(USA)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메모리칩 공급 과잉을 우려하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지만, 이달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서 AI 산업의 폭발적인 수요 확대를 근거로 메모리 시장이 가격 상승을 동반한 활황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이는 AI 서버,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서비스 확장이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구조적으로 떠받치고 있다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 사회의 시선은 메모리 제조사들의 설비 투자와 생산 전략에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주요 기업들이 HBM과 일반 메모리 간 생산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따라 내년 이후 수급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AI용 고부가가치 메모리에 치우친 투자 전략이 계속될 경우, 일반 PC·모바일용 메모리 공급 긴축과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 IT업계와 투자자들은 AI 붐이 촉발한 메모리칩 슈퍼 사이클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그리고 각국 소비자 물가와 전자제품 시장에 어떤 파급효과를 낳을지 주목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주요 제조사들의 증설 계획과 수급 조정 움직임이 실제로 얼마나 이행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