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절개로 복합판막 수술”…분당서울대병원, 회복속도·안전성 입증
복합 심장판막 질환 수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가슴뼈를 크게 여는 전통적인 정중흉골절개술 대신 갈비뼈 사이로 들어가는 최소침습수술이 복잡한 판막 질환에서도 안전성과 회복 속도 면에서 우위를 보였다는 국내 임상 결과가 발표됐다. 심장수술 분야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복합판막 수술에 최소침습 기법을 본격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면서, 향후 고위험 심장질환 환자 치료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제형곤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팀이 최근 열린 제57차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대동맥 판막을 포함한 복합 심장판막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최소침습수술의 중기 성적을 공개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는 복합판막 수술에서 최소침습 접근법이 기존 정중흉골절개술과 비교해 수술 성공률, 합병증, 재원 기간 등 주요 지표에서 손색이 없거나 오히려 뛰어나다는 점을 확인했다.

심장판막 질환은 심방과 심실 사이, 혹은 심실과 대동맥·폐동맥 사이에서 혈액의 흐름을 조절하는 판막 조직이 좁아지거나 새는 병이다. 복합 심장판막 질환은 승모판, 대동맥판, 삼첨판 등 두 개 이상 판막에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 상태를 말하며, 수술 범위가 넓고 수술 시간이 길어 전통적으로 정중흉골절개술이 표준으로 사용돼 왔다. 정중흉골절개술은 흉골을 세로로 절개해 심장을 직접 노출하는 방식으로 시야 확보는 용이하지만, 절개 범위가 크고 통증과 감염 위험, 회복 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최소침습 심장수술은 오른쪽 가슴 또는 갈비뼈 사이에 수 센티미터 안팎의 작은 절개를 통해 내시경 또는 특수 수술 기구로 심장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흉골을 절단하지 않아 출혈이 적고 흉터가 작으며, 통증 감소와 빠른 일상 복귀가 기대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흉부외과학회 통계에서 전체 심장판막 수술 중 최소침습 방식 비율이 10~20퍼센트 수준에 머무르고, 복합판막 수술에서는 적용이 제한적이었던 이유도 수술 난이도와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센터 심장판막 수술팀은 지난 20여 년간 2000건이 넘는 심장판막 수술을 최소침습 방식으로 진행하며 국내 최소침습 심장수술 분야를 개척해왔다. 단일 판막질환 수술의 90퍼센트 이상을 최소침습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고난도 복합 심장판막 질환에도 이를 확대 적용해 왔다. 병원 측은 축적된 경험과 술기가 이번 임상 성적에 직결됐다고 설명한다.
제형곤 교수팀은 2015년 5월부터 2024년 5월까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복합 심장판막 수술을 받은 환자 203명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전통적인 정중흉골절개술을 받은 173명과 최소침습수술을 받은 30명을 비교한 결과, 수술 성공률은 정중흉골절개술군 약 97퍼센트, 최소침습군 100퍼센트로 나타났다. 특히 최소침습수술군에서는 수술 후 뇌졸중, 신부전 등 주요 중증 합병증과 심장보조장치 사용이 보고되지 않아 안전성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과로 평가된다.
회복 속도에서도 차이가 컸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수술 직후 가능한 한 빠르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조기 발관 프로그램과 수술 다음 날부터 보행을 유도하는 재활 프로토콜, 조기 퇴원 시스템을 결합한 ‘패스트 트랙’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최소침습수술 환자의 93.3퍼센트가 수술 후 2일 이내에 중환자실을 떠났고, 96.7퍼센트가 10일 이내에 퇴원했다. 실제로 최소침습수술 환자 상당수는 4~5일 만에 퇴원해 정중흉골절개술 환자의 평균 퇴원 시점인 8~9일보다 회복 기간이 눈에 띄게 짧았다.
이번 결과는 수술 접근법이 단순히 피부 절개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치료 경로와 의료자원 사용 효율까지 좌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통증과 출혈 감소는 마취제·진통제 사용량을 줄이고, 조기 보행은 폐렴과 혈전증 같은 수술 후 합병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여기에 재원 기간 단축이 더해지면 중환자실과 병상 회전율이 높아져 병원 입장에서도 운영 효율이 개선될 수 있다.
글로벌 심장수술 분야에서도 최소침습·로봇 수술 비중 확대가 뚜렷한 추세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북미와 유럽의 일부 상급 병원은 승모판 단일질환의 경우 최소침습·로봇 수술 비율을 50퍼센트 이상까지 끌어올리고 있으며, 복합판막과 관상동맥우회술 동시 수술 등 고난도 케이스로 적용 범위를 넓히는 단계에 들어섰다. 다만 환자의 연령, 동반 질환, 판막 손상 양상에 따라 최적 접근법이 달라지는 만큼, 각 센터의 경험과 장비, 팀워크가 성적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복합 심장판막 수술은 심폐기 사용 시간, 수술 시간, 출혈량 등에서 고위험군 수술로 분류되는 만큼, 각국 학회와 규제 당국은 수술 성적 데이터 축적을 중시하는 흐름이다.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도 최소침습 수술을 일괄 우선 권고하지 않고, 환자 특성과 의료진 숙련도를 고려한 선택적 적용을 제시하는 방향이 유지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한국형 데이터로 복합판막 영역에서 최소침습 접근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제형곤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센터가 로봇수술, 최소침습 승모판·대동맥판·삼첨판막 수술 등 거의 모든 심장판막 수술 영역에서 최소침습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절개 범위 축소가 목표가 아니라, 수술 전후 평가, 마취와 통증 관리, 집중치료와 재활, 퇴원 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통합 프로세스를 정교하게 설계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병원은 심장혈관흉부외과, 순환기내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중환자진료부 등이 참여하는 ‘하트팀’ 통합진료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의들은 이번 결과가 국내 심장수술 전반에서 최소침습 기법 채택을 가속할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복합판막 수술은 환자 상태가 다양하고 샘플 수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만큼, 더 큰 규모의 다기관 연구와 장기 추적 데이터가 축적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복잡한 심장질환 수술에서 최소침습 기술이 실제 표준 치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