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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해변에서 사찰 고요까지”…양양 가을, 자연에 기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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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해변에서 사찰 고요까지”…양양 가을, 자연에 기대는 시간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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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동해의 기운이 스며든 양양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때는 여름 서핑과 해수욕이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선선한 바람 따라 들르는 산책과 고요한 휴식을 경험하려는 발걸음이 많아졌다. 조용한 모래사장, 파도와 바람, 그리고 사찰의 깊은 침묵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곳. 사소해 보이지만, 계절 앞에 마음이 달라지는 순간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된다.

 

23일 오후 양양의 기온은 22.4도, 흐린 하늘과 3.1m/s의 바람이 어우러져 해변엔 부드러운 시원함이 감돈다. “물소리가 가까워지면 생각이 잠긴다”는 말처럼, 현북면 하조대해수욕장에선 잔잔한 바다의 숨결이 느긋하게 밀려온다. 고운 백사장을 따라 걷거나, 뽀얀 물끝에 발을 담그며 세상과 잠시 멀어진 느낌을 얻는 이들도 많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양양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양양

죽도정에 오르려 해안길을 따라가는 동안, 군데군데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를 맑게 한다. 절벽 위 정자에 앉으면 동해의 시린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탁 트인 시야에서 바람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고 여행객들은 표현한다. 동해의 거센 바다는 없지만, 계절을 밀어내는 바람과 소나무 숲의 향기에 작은 위로를 느끼는 순간이 축적된다.

 

통계로 보자면, 최근 몇 년간 양양지역 자연휴양지 방문객은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인다. 한국관광공사 생활여행 트렌드 보고서에서도 “바빠진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호흡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분석한다. 단체보다 혼행 혹은 가족 단위의 소규모 여행이 많아진 흐름이 양양의 차분한 풍경과도 잘 어울린다.

 

고즈넉한 시간을 찾는 심리에는 지친 도시 생활 속 쉼표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다. 김지훈 여행 칼럼니스트는 “동해안에서 맞는 가을 바람과 사찰의 고요, 낯선 해안길이 주는 감각적 경험은 삶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가 된다”고 조언했다. “양양의 가을은 아주 느린 템포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좇아 최근 인기를 끄는 것이 낙산사 템플스테이다. 아침이면 천년고찰 낙산사에 파도 소리가 스며들고, 저녁엔 노을이 사찰 너머를 물들인다. 명상, 예불, 차담 같은 활동은 “자신의 내면과 조용히 친해지는 시간”이라고 참여자들은 느낀다. 예약 후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간 한 방문객은 “파도에 실려 온 고요가 오래 남아, 집에서도 문득 그때의 바람이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양양의 바다는 너무 조용해 좋다”, “죽도정에서 내려다보는 해안선에 마음이 씻겨 나간 기분”이라는 여행담이 이어진다. “하조대 백사장을 산책하다 보면 미루었던 생각들이 서서히 정돈된다”는 말도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매년 가을 이 길을 걷는 일을 “작은 연례 의식”이라 표현한다.

 

양양에서의 하루는 특별히 화려하지 않다. 대신, 시린 바다와 선선한 바람, 사찰의 고요, 그리고 그곳에 편히 기댄 자신의 마음이 전부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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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하조대해수욕장#낙산사템플스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