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누리호 쏜다”…정부·한화, 상업발사 체제로 전환 예고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네번째 도전에 성공하며 국내 우주 수송 체계가 양적·질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첫 민관 합동 발사이자 첫 야간 발사로 기록된 이번 임무는 단발성 기술 검증을 넘어, 정부가 목표로 하는 연례 발사와 상업 발사 시장 진입의 발판으로 평가된다. 정부와 우주항공청은 6차 발사까지 마치는 2027년 이후에도 7·8차 발사로 이어지는 연속 발사 체계를 구축해, 발사 빈도와 민간 참여를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누리호의 반복 발사 체제가 국내 위성 수송 비용 구조를 바꾸고, 중장기적으로 한국형 우주 산업 공급망 재편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우주항공청,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7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누리호 4차 발사 임무가 정상 종료됐다고 밝혔다. 누리호는 이날 새벽 1시 13분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이륙해 최종 고도 601.3킬로미터, 궤도 속도 초속 7.56킬로미터, 경사각 97.75도의 태양 동기 궤도에 진입했다. 태양 동기 궤도는 지구를 도는 동안 항상 비슷한 태양 고도에서 관측이 가능해, 지구 관측·정찰·환경 모니터링 위성에 널리 활용되는 궤도다.

이 궤도에 도달한 누리호는 주탑재체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큐브위성 12기 등 총 13기를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3기 모두 목표 궤도로 분리·안착됐고, 차세대중형위성 3호는 발사 약 42분 후인 새벽 1시 55분 남극 세종기지 지상국과 초기 교신에 성공했다. 이는 발사체 성능뿐 아니라 위성 분리 메커니즘과 탑재체 운용 준비 절차까지 계획대로 작동했음을 의미한다.
기술 성능 면에서 누리호 4차 발사는 설계치를 상회했다. 관계기관 설명에 따르면 총 비행시간은 이륙 후 18분 25초로, 사전 예상보다 약 3분 단축됐다. 1·2·3단 엔진 모두 실제 연소 성능이 추정값보다 높게 나와, 단계 분리와 궤도 진입에 필요한 연소 시간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발사체 설계에서 연소 성능 여유는 탑재체 중량 확대, 추가 임무 설계, 향후 개량형 개발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기술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요소로 꼽힌다. 특히 이번 발사에서 13기 동시 탑재·분리에 성공한 점은 누리호가 단일 정찰·과학 임무를 넘어, 다수 상용 위성을 한 번에 쏘아 올리는 군집 발사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발사의 또 다른 의미는 민간 기업이 본격적으로 발사체 제작과 운용에 참여하는 구조가 가시화됐다는 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4차 발사에서 처음으로 전체 조립을 맡았다. 지금까지 비행 운용은 항우연이 주도하고 있지만, 누리호 5·6차 발사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역할이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현재 발사지휘센터와 발사관제센터 콘솔에서 한화 인력은 보조 역할과 학습에 집중하고 있으며, 향후 발사에서는 실제 콘솔 운영과 임무 관리까지 책임 범위를 넓히는 로드맵이 제시됐다. 이는 발사체를 국가 연구소 중심에서 민간 산업 중심으로 전환해, 장기적으로 상업 고객을 상대로 발사를 제공하는 서비스 모델을 염두에 둔 구조로 볼 수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발사를 두고 대한민국이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재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와 민간, 국가 연구소가 하나의 팀을 이룬 최초의 민관 공동 발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내 우주산업 생태계가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민간 참여 확대는 발사체 조립·시험을 넘어 재료, 정밀 가공, 전자·소프트웨어, 지상국·운영 서비스까지 파급될 수 있어, 향후 우주 산업 전반의 공급망 자립과 일자리 창출과도 연결되는 사안이다.
시장성과 측면에서 누리호의 반복 발사 체계 구축은 위성 발사 수요를 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힌다. 현재 진행 중인 누리호 고도화 사업 기간, 즉 6차 발사까지는 탑재체 비용을 받지 않는다. 국가의 공공 임무를 우선으로 탑재 위성을 선정하고 발사 비용은 정부가 부담하는 구조다. 7차 발사부터는 민간이 발사를 주도하게 되며, 이때부터는 상업 고객 탑재체 비용 산정 방식이 핵심 변수로 떠오른다. 아직 세부 모델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우주항공청과 협의를 통해 국제 경쟁력과 국내 시장 육성을 모두 고려한 가격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발사체 제작 경험을 토대로 향후 상업 발사 시장 진출 의지도 드러냈다. 회사 측은 우주 분야가 우주항공, 신소재, 인공지능, 통신 등 첨단 기술이 집약되는 산업인 동시에, 미래 전쟁과 국가 안보에서도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는 영역이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자국 발사체 보유가 우주 경제 실현의 전제 조건이라는 판단 아래, 발사체의 경제성을 확보하면서도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 발사 능력을 유지·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세계적으로 미국 민간기업이 상업 발사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한국도 민관 협력 모델로 자체 시장을 키워가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다만 지속 가능한 민간 주도의 발사 산업을 위해서는 발사 공백을 최소화하는 수요·공급 관리가 관건이다. 한화 측은 3차와 4차 발사 사이 2년 6개월 공백으로 산업 생태계 유지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기술 인력 이탈과 협력업체 가동률 하락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우주항공청이 2027년 6차 발사 이후 2028년 7차 발사를 바로 이어가고, 8차 이후부터는 적어도 연 1회 이상 발사를 계획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례 발사를 통해 발사체 생산·운용 라인을 상시 가동하고, 산업 인력과 협력업체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발사 운용 측면에서는 안전성 확보와 국제 규범 준수가 강화되고 있다. 당초 0시 55분으로 설정된 발사 시각이 1시 13분으로 미뤄진 것은 엄빌리컬 타워 압력 센서 이상 징후 때문이었다. 4개 암으로 구성된 엄빌리컬 타워 중 1개 암의 압력 센서 값이 비정상으로 확인되자, 발사팀은 즉시 점검 시간을 확보하고 발사 가능 시간 범위 내에서 가장 늦은 시각으로 조정했다. 발사 가능 시간은 위성 목표 궤도, 지구 회전, 우주 물체 분포 등을 종합해 설정되는 이른바 발사 윈도우로, 이날 누리호의 윈도우는 0시 54분부터 1시 14분까지였다.
국제우주정거장과의 근접 우려에 대한 관리도 눈에 띈다. 한 달 전 수행된 초기 분석에서는 27일 1시 13분 전후 누리호가 ISS와 200킬로미터 이내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됐지만, 실제 발사에 앞서 발사 일주일 전, 하루 전, 8시간 전 등 세 차례에 걸쳐 최신 궤도 데이터를 반영한 재분석을 진행했다. 우주정거장과 기타 우주 물체들은 임무에 따라 수시로 궤도를 미세 조정하기 때문이다. 최신 분석 결과 1시 14분까지 200킬로미터 이내 근접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1시 13분 발사는 충돌 위험이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처럼 발사 직전까지 우주 물체 충돌 위험을 반복 검증하는 절차는 향후 상업 발사 확대 과정에서도 필수 규제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정책·제도 측면에서 누리호 고도화 사업은 6차 발사까지 정부 주도의 기술 축적과 신뢰도 검증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이 사업의 연장선에서 7차 발사 예산을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이후 구체적인 발사 일정과 탑재체 선정 기준, 민간 참여 범위를 단계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군·민 겸용 정찰 위성, 통신·지구관측 상용 위성, 소형 위성 군집 등 다양한 수요를 묶어 정기 발사를 운영하는 플랫폼 정책이 요구된다. 국내 법·제도는 아직 발사 서비스 요금 규율, 발사 실패 시 책임 범위, 우주 잔해 처리 의무 등 세부 규정이 부족해, 향후 우주항공청과 관계 부처의 입법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상업 발사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한국형 발사체의 경제성과 차별화 전략도 과제로 남는다. 누리호는 현재 중형급 발사체로, 동급 국제 발사 서비스와의 가격·성능 경쟁에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은 아직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보유하지 못해 반복 발사에서의 비용 우위 확보가 쉽지 않다. 대신 국내 공공 수요와 주변국 위성 발사 수요를 겨냥한 안정적 슬롯 제공, 다수 소형 위성 동시 발사 능력, 정밀 태양 동기 궤도 투입 능력 등을 앞세운 니치 시장 전략이 거론된다. 향후 재사용 1단 기술, 하이브리드 추진계, 고효율 엔진 개발이 뒷받침되면 가격 경쟁력도 개선될 여지는 있다.
전문가들은 누리호의 반복 발사 체계가 본격 가동되면, 위성 개발 기업과 데이터 서비스 기업이 동시에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발사 기회가 연례 행사 수준으로 보장되면, 스타트업과 연구기관이 소형 위성 프로젝트를 중장기 계획에 따라 추진할 수 있어 위성 탑재체와 지상 데이터 서비스 시장이 함께 확장될 여지도 있다. 동시에 발사 빈도 증가에 따라 우주 잔해 관리, 궤도 교통 관리, 발사 실패 책임 소재 등 새로운 규제 이슈도 부각될 전망이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은 누리호가 단순한 국가 과학 기술 상징을 넘어, 경제성이 검증된 우주 수송 인프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 성숙도와 발사 빈도, 상업 모델과 규제 체계가 맞물려야만 한국형 발사체가 진정한 우주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과 산업, 제도가 균형을 이루며야만 누리호 이후 한국 우주경제의 다음 단계가 열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