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원인, 정신질환만이 아니다”…고려대, 사회경제 요인 분석 공개
정신질환 진단이나 명확한 증상 없이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주된 원인인 사례가 국내 전체 자살 사망자의 4분의 1 수준에 이른다는 대규모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의료계에서는 자살예방 접근법을 기존 정신건강 위주에서 고용·주거·복지 등 사회적 인프라 개선으로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분석을 ‘자살 원인 규명과 예방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이요한 교수팀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협업, 경찰청이 집계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10만2593건의 국내 자살 사망자 수사기록 전수 데이터를 분석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진은 자살 동기를 정신건강 문제, 신체건강 문제, 정신건강 및 사회경제적 문제, 사회경제적 중심 문제 등 네 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했다.

분석 결과, 전체 자살 사망자 중 22.5%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 진단 또는 뚜렷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적·직업적 어려움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 직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집단은 자살 시도 전력이나 사전 신호 표출 빈도가 낮은 반면, 사망 직전 음주율 및 가스중독 비율은 타 집단 대비 높게 집계됐다. 기존 위험군 선별 기준으로는 포착되기 어려운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연구진 해석이다.
특히 최근 들어 사회경제적 원인에 따른 자살군의 비중이 증가세를 보여, 사회 구조적 위험 요인에 대한 종합적 개입 마련이 시급하다는 현장 평가도 나온다. 글로벌 자살예방 정책 역시 복지·고용·주거 안정 강화에 방점을 두는 추세이며, 국제기구는 사회적 자본과 정신건강 보호 정책을 병행하는 모델 확산을 독려 중이다.
국내의 경우, 자살 원인 분석과 관련 정책의 상당 부분이 정신질환 위주로 편중돼 있다는 점에서 이번 분석이 정책적, 제도적 보완 논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구팀은 “자살을 개인 질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경제적 인프라 전반의 개선이 병행돼야 장기적 예방 정책의 실효성이 높아진다”고 진단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생명존중 관련 기관에서는 데이터 기반 위험 신호 예측 시스템 등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실제 정책 설계 단계에서 자살 원인에 대한 다층 해석이 이뤄져야 산업·사회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계는 이번 연구 결과가 공공·의료·복지 각 부문의 데이터 연계를 통한 자살 예방 정책 고도화의 신호탄이 될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