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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향에 물든 늦여름”…순창, 전통과 자연이 빚은 시간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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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향에 물든 늦여름”…순창, 전통과 자연이 빚은 시간의 휴식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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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순창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예전엔 고추장의 고장 정도로만 여겨졌지만, 지금은 발효음식의 향과 구름 많은 여름 풍경이 나란히 걷는 여정의 일부가 됐다. 사소한 변화 같지만, 그 안엔 우리가 달라진 여행의 태도와 자연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구름이 넉넉히 드리운 늦여름 순창. 최고 31도, 습도 81%의 후덕지근한 공기지만, 장독대가 가득 늘어선 민속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오히려 진한 고추장 향과 고운 바람이 절로 일상의 무게를 덜어준다. SNS에는 순창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의 장독대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고추장만큼이나 다양한 장아찌, 한옥 처마 밑에 달린 메주까지—이 마을의 풍경 자체가 오랜 시간을 그대로 품었다는 평가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순창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순창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순창군은 지난해보다 전통 장류 체험관 방문객이 20%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내 손으로 만드는 고추장’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가 높다. 가인농장처럼 직접 꿀을 떠보고 엉겅퀴 고추장을 빚는 농장형 체험도 젊은 여행객과 가족 단위 여행자가 찾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마을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점이 방문객의 마음을 돌린다”고 분석했다. 한 여행 트렌드 칼럼니스트는 “타지인은 온전히 머무르고, 마을 장인들은 그대로 살아간다—그런 상생의 풍경이 한국 농촌 여행의 매력”이라고 표현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고추장 냄새에 어릴 적 할머니 집이 떠올랐다”, “잡다한 일정 없이 고즈넉하게 하루를 보내니 오히려 재충전됐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구암사 돌계단이나 장류박물관 앞에서 오래 머무는 인증 사진이 눈에 띈다. 그만큼 순창은 ‘빨리 보기’보다 ‘천천히 느끼기’가 당연해진 여행지로 자리잡았다.

 

사실 여행 중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장독대 앞에서 메주를 만지고, 치유농장에서 엉겅퀴 고추장 만들기를 해보는 경험 자체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삭인다. “작고 소박한 마을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체험담이 이렇게 쌓인다.

 

순창을 다녀온 이들은 말한다.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숨’이 독특하다”고. 긴 시간 쌓인 장인의 손맛, 바풋한 자연, 절집의 정적이 느리게 번져간다. 여행은 기록보다 기억의 문제가 되고, 순창에서의 하루는 일상으로 돌아가도 오래도록 남는다.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는 한여름의 순창 여행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로컬의 시간과 깊이를 천천히 느끼는 일—지금 이 변화는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한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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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가인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