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기로디, 자비를 탐닉한 스릴러 미로”…미세리코르디아, 욕망과 죄의식의 밤→칸의 충격 확산
조명이 어스름하게 번지는 밤, 소도시의 장례식장 한복판에 선 제레미의 모습이 기억의 매듭을 천천히 풀어낸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그의 침묵엔 지나간 시간과 맞물린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빵집 사장의 죽음, 그리고 말없이 교차하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제레미를 둘러싼 욕망과 죄의식으로 숨을 죽인다.
‘미세리코르디아’는 장례식장을 무대로 욕망, 의혹, 미묘한 감정들이 교차하는 범죄 스릴러다. 단순한 이별이 아닌, 남겨진 자들의 불안과 풀리지 않는 긴장,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살인이 번져간다. 제레미와 마을 남성들의 애매모호한 욕망, 자신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는 인간 군상들이 알랭 기로디 감독 특유의 독특한 연출에 실려 스크린에 펼쳐진다.

이 작품의 제목인 ‘미세리코르디아’는 라틴어로 ‘자비’라는 뜻을 품는다. 감독은 속삭이는 대사와 정제된 서사로 욕망과 죄책감, 그리고 용서라는 인간적 감정의 경계를 세밀하게 파고들었다. 차가운 어둠 속 깊숙이 숨어 있는 자비의 본질을 묻는 듯한 시선이 관객의 마음에 오래 여운을 남긴다.
알랭 기로디 감독은 프랑스 퀴어 시네마에서 독보적 위상을 쌓아올린 창작자다. 2013년 ‘호수의 이방인’으로 칸 영화제 두 부문을 휩쓴 바 있으며, 이번 신작 역시 칸 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초청작으로 영화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봉준호 감독이 “‘항상 신작이 궁금해지는 괴력의 감독”이라 평할 만큼, 알랭 기로디는 한계와 관습을 끊임없이 넘나드는 서사와 심리 묘사로 평단과 관객을 동시에 충격에 빠뜨려왔다.
이처럼 ‘미세리코르디아’는 인간 내면의 어둠과 자비, 그리고 용서의 이중적 세계 사이를 정교하게 직조한다.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가 교차하는 미장센 속에서, 제레미와 마을 사람들 각자의 굴레와 심리적 비밀이 한 겹씩 벗겨진다. 강렬한 이미지와 촘촘한 이야기 구조는 관객으로 해금 끝을 예견할 수 없는 미로 한가운데로 유인한다.
장례식장에 깃든 고요한 긴장과, 말없이 던지는 시선들이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알랭 기로디 감독의 ‘미세리코르디아’는 범죄와 욕망, 용서와 죄의식이 뒤섞인 프랑스 장르영화의 신선함을 증명한다. 국내 관객들은 다음 달 16일, 극장 스크린에서 욕망과 자비가 교차하는 기묘한 밤의 미로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