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지역산업 재편 노린다…카카오엔터, 전남과 GPU 인프라 구축
인공지능이 지역 주력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됐던 AI 자원과 역량을 지방으로 분산해 중소 제조·에너지·바이오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려는 움직임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전라남도와 손잡고 추진하는 지역 주도형 AI 대전환 사업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역 산업 구조 재편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GPU 인프라와 AI 플랫폼을 매개로 한 지역 균형 성장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전라남도와 함께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2025년 지역 주도형 인공지능 대전환 사업에 참여한다고 19일 밝혔다. 이 사업은 AI 활용률이 낮은 지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각 지역의 산업 구조와 여건에 맞춘 맞춤형 AI 활용·확산 프로그램을 최대 2년간 지원하는 정책 사업이다.

전라남도는 화학·철강·세라믹 등 소부장 산업과 제약·식품 등 바이오 산업,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핵심 타깃으로 정했다. 도내 기업의 AI 도입 수준을 정밀 진단한 뒤 공정 최적화, 품질 관리, 수요 예측, 설비 고장 예지 등 산업별 특화 니즈에 맞춰 AI 설비와 솔루션 도입을 지원할 계획이다. 동시에 산업별 운영 데이터를 활용해 현장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실증하는 단계까지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전라남도가 총괄하고 전남테크노파크가 주관기관으로 참여한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 한전케이디엔, 중소기업일자리경제진흥원, 순천대학교, 한국에너지공과대학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공공 연구기관과 에너지·전력, 학계가 동시에 참여하는 구조로 AI 인프라, 데이터, 응용 서비스까지 전 주기를 포괄하는 점이 특징이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 클러스터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고성능 AI 인프라 구축과 운영을 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고성능 AI 인프라 구축 및 운영, AI 오픈 플랫폼 설계 및 구축, 마이크로그리드 AI 솔루션 도입 및 실증, AI 활용 인프라 관제 시스템 구축 등을 2개년에 걸쳐 수행할 계획이다.
1차년도에는 지역 수요 기업이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고성능 하이브리드 서비스형 GPU 제공에 집중한다. GPUaaS 형태로 자원을 제공해 초기 투자 부담 없이 AI 모델 개발과 학습, 추론을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다. 특히 엔비디아 B200 GPU 기반의 고성능 컴퓨팅 환경을 제공해 대규모 언어 모델과 고해상도 시뮬레이션 등 연산 집약적 업무까지 수용 가능한 수준의 인프라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수준의 연산 자원을 공유 인프라 형태로 제공하는 모델로, AI 도입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2차년도에는 이렇게 구축된 AI 인프라를 기반으로 실제 산업 현장의 프로세스와 서비스에 AI를 깊이 통합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전라남도 주력 산업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수집·저장하고, 이를 이용해 AI 모델을 학습·운영하며, 현장에 적용 가능한 AI 에이전트를 배포하는 과정을 포괄하는 AI 오픈 플랫폼을 설계·운영할 계획이다. 플랫폼 기반 구조를 도입하면 기업별로 개별 프로젝트를 반복하는 대신, 공통 인프라와 개발 도구를 공유해 AI 전환의 단가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마이크로그리드 AI 솔루션 실증도 병행한다. 마이크로그리드는 태양광·풍력 등 분산형 전원을 지역 단위에서 통합 관리하는 소규모 전력망으로, 수요 예측과 설비 제어의 복잡도가 높다. 여기에 AI를 접목하면 실시간 전력 수급 균형을 맞추고 피크 전력을 줄여 에너지 비용 절감과 전력망 안정성 제고 효과가 기대된다. 전남이 보유한 풍부한 신재생에너지 인프라와 결합할 경우, 지역 특화형 에너지 AI 모델로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업에는 국가 고성능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보유한 KISTI, 통신·네트워크·AI 원천 기술을 축적해온 ETRI가 참여해 AI 알고리즘 고도화와 데이터 처리 체계 설계를 지원한다. 한전케이디엔과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은 전력·에너지 분야 현장 데이터와 도메인 지식을 제공해 마이크로그리드를 비롯한 에너지 AI 솔루션의 실증과 고도화를 함께 추진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지역 주도형 AI 인프라 구축이 향후 국내 AI 산업 경쟁력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변수로 보고 있다. 특정 대기업과 수도권에 집중된 컴퓨팅 자원을 지역 단위에서 공유 인프라로 전환하면, 중소 제조·에너지·바이오 기업도 글로벌 수준의 AI 툴과 인프라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성과는 산업 데이터 수집과 품질 관리, 인력 양성, 보안·거버넌스 체계 구축 속도에 따라 갈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민 카카오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부문장은 전라남도 지역 기업이 AI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고 지속 가능한 지역 산업 생태계 구축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라남도가 대한민국 AI 대전환의 선도 사례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내놓았다. 산업계는 이번 지역 주도형 AI 대전환 사업이 GPU 인프라 구축을 넘어 실제 공장과 발전소, 연구소 현장에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