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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중항체까지 설계”…신테카·파노로스, 차세대 항암 승부수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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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반 항체 설계 기술이 다중항체 치료제 개발의 새 길을 열고 있다. 복합적인 면역 경로를 동시에 조절하는 다중표적 항체는 차세대 항암·면역질환 치료 전략으로 부상했지만, 기존 실험 중심의 항체 발굴 방식으로는 표적 조합과 구조를 충분히 탐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업계에서는 AI와 다중항체 플랫폼의 결합이 글로벌 항체 신약 경쟁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을 키우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신약 개발 기업 신테카바이오와 다중항체 기반 신약 개발 기업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차세대 다중표적 항체치료제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협약에 따라 후보물질 발굴부터 비임상, 임상, 글로벌 기술 이전에 이르는 상업화 전 단계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다중항체는 하나의 항체 분자가 두 개 이상 표적에 동시에 결합하도록 설계된 형태로, 암과 자가면역질환 등 복합 질환에 관여하는 여러 면역 경로를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모달리티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단일항체는 특정 타깃만을 공략해 일부 환자군에서 반응이 제한적이거나 내성이 생기는 한계가 있었던 반면, 다중항체는 종양 미세환경 조절, 면역억제 신호 차단 등 다양한 기전을 통합해 치료 반응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그러나 전통적인 항체 발굴 방식은 방대한 라이브러리에서 무작위에 가까운 선별 과정을 반복하는 구조로, 각 표적에 최적화된 고품질 항체를 충분한 조합 수만큼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두 개 이상 표적을 동시에 겨냥하는 다중항체는 결합 친화도, 안정성, 발현 효율, 면역원성 등 수많은 설계 변수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해, 실험만으로 구조 조합을 탐색하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급격히 늘어난다.

 

신테카바이오는 이러한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 AI 기반 항체 발굴 플랫폼 Ab ARS를 개발했다. Ab ARS는 항체 서열과 구조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을 활용해 항원 결합 부위(CDR) 서열을 예측하고, 3차원 구조 안정성과 결합 친화도 등을 동시에 평가하면서 탐색·설계·최적화를 수행하는 플랫폼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Ab ARS를 활용하면 후보 항체 풀 구축에 필요한 실험 횟수를 대폭 줄이면서도 결합력과 특이성이 높은 서열을 선별할 수 있고, 기존 방식 대비 후보군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출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협업에서 우선 개발 대상으로 선정된 항체 5종은 신테카바이오의 에셋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물질이다. 에셋 프로그램은 항체와 합성신약 후보를 동시에 발굴하도록 설계된 통합 플랫폼으로, 항체 발굴 파이프라인에 Ab ARS 기술이 적용된다. 신테카바이오는 해당 항체들이 다중표적 조합에 적합한 결합 특성과 약리학적 잠재력을 갖추도록 AI 기반 시뮬레이션을 거쳐 선별했다고 설명한다.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는 자체 개발한 다중항체 플랫폼 Αart 기술을 통해 이들 항체를 실제 다중항체 형태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Αart는 서로 다른 항체 단편을 하나의 분자 안에 안정적으로 배치하고, 표적당 결합 비율과 공간적 배열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엔지니어링 기술을 핵심으로 한다. 이를 통해 두 개 이상 표적에 대한 동시 결합을 유지하면서도 제조 공정 호환성과 체내 약동학 특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협약에 따라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는 선정된 5종 항체에 대한 생산과 효능평가를 우선 수행한다. 여기에는 세포 수준의 결합 및 신호 억제 실험, 동물 모델에서의 항종양 효과 및 독성 평가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신테카바이오는 비임상 결과에 따라 유망한 조합을 중심으로 기술 이전과 공동 임상 개발 전략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양사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제약사 대상 라이선스 아웃과 공동 개발 계약 체결까지 염두에 두고 상업화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다중항체 시장은 글로벌 빅파마를 중심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구간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특정 면역관문 단백질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중항체가 후기 임상 단계에 다수 진입해 있고, 세포치료제와 병용하는 고차 다중항체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다중항체 설계 기술과 대규모 임상 경험 모두가 축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만큼, AI 설계 플랫폼과 다중항체 엔지니어링 기술을 결합한 이번 협업이 글로벌 기술 격차를 좁히는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다중항체 치료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규제와 개발 리스크 관리도 관건으로 꼽힌다. 구조가 복잡한 만큼 제조 공정 검증, 품질 일관성 확보, 면역원성 평가 등에서 규제기관의 요구 수준이 높아질 수 있고, 병용요법과 유사한 수준의 안전성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외 규제당국이 다중항체를 기존 단일항체와 동일한 틀에서 평가할지, 별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지는 향후 산업 속도를 좌우하는 변수로 남아 있다.

 

정종선 신테카바이오 대표는 양사 기술 역량이 결합해 차세대 다중표적 치료제 개발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혜성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대표도 신테카바이오의 AI 기술과 자사의 다중표적 항체 개발 역량이 강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두 회사의 협력이 실제 임상 성과와 글로벌 기술 이전으로 이어져 국내 AI 기반 항체 신약 생태계에 마중물이 될지 주시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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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테카바이오#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다중항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