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MCA 탈퇴 항상 가능한 시나리오”…미국, 북미 자유무역체제 재편론에 긴장 고조
현지시각 기준 5일, 미국(USA) 워싱턴에서 북미 역내 자유무역체제의 핵심 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과 관련한 중대한 발언이 나왔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수장인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내년 USMCA 탈퇴 가능성을 공개 언급하면서 미국, 멕시코(Mexico), 캐나다(Canada) 3국 간 무역 질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오는 해 예정된 첫 협정 이행 검토를 계기로 협정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그리어 대표는 이날 미국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의 주간 팟캐스트 ‘컨버세이션’에 출연해 USMCA 탈퇴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에 “항상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답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에 USMCA에서 탈퇴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으며,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정치·통상 일정상 충분히 현실화 가능한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현지시각 기준 2026년으로 예정된 첫 이행 검토를 앞두고 탈퇴 카드가 공개 거론된 것은 역내 시장에 직격 변수가 되고 있다.

그리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정책 기조와 관련해 “대통령의 관점은 좋은 거래만 원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USMCA에 6년마다 협정 이행사항을 점검하는 ‘검토 기간’ 조항을 넣은 이유도 필요할 경우 협정을 수정하거나 재검토하거나 탈퇴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검토 조항은 협정을 고정된 것으로 두지 않고, 미국의 이익에 맞게 언제든 재조정할 수 있는 안전판”이라고 취지를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어 대표는 나아가 USMCA 구조 자체를 바꾸는 구상도 언급했다. 그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분리해 미국-캐나다, 미국-멕시코의 두 개 양자협정 체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히며, “이 문제를 이번 주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캐나다, 멕시코와의 경제 관계가 성격상 크게 다르기 때문에 세 나라를 하나의 협정으로 묶어둘 경제적 이유가 많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리어 대표는 “미국의 캐나다 경제와 관계는 미국의 멕시코 경제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 나라가 노동 환경, 생산 품목, 수출입 구조 측면에서 모두 상이하다며, 자동차와 부품, 농산물, 에너지, 지식재산 등 각 분야에서 이해관계와 규제 수준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3자 다자협정보다는 미국 입장에서 보다 맞춤형 조건을 반영하기 쉬운 양자협정 체제가 협상력 강화에 유리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USMCA는 트럼프 행정부 1기였던 2018년 11월 말 3국이 서명하고 2020년 1월 발효된 협정이다. 1994년 발효돼 북미 자유무역의 토대를 제공했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새로운 틀로, 3국 간 주요 상품과 서비스 교역에 무관세를 적용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NAFTA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키우고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켰다고 줄곧 비판했고, 재협상 끝에 USMCA를 출범시켰다.
USMCA에는 6년마다 협정 이행사항 검토를 실시하고, 16년을 기준으로 협정 연장 여부를 논의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첫 이행 검토 시점은 내년으로 예정돼 3국이 협정 운용 성과와 조정 필요성을 공식 테이블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행 검토 절차를 ‘평가 회의’가 아닌 사실상의 ‘재협상 개시’ 기회로 간주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탈퇴 카드를 병행해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리어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 통상 전략의 최우선 목표로 제조업 일자리의 리쇼어링을 제시했다. 그는 “제조업 일자리를 해외에서 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이 목표”라며 첨단 제조업, 자동차, 제약, 반도체를 중점 유치 산업으로 꼽았다. 이들 분야를 중심으로 미국 내 신규 투자와 생산기지 이전이 실제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협정 재편 논의 역시 역내 가치사슬을 조정해 미국 내 생산·고용을 극대화하려는 전략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협상 방식을 ‘탈퇴 협박’에 기반한 전형적 전술로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USMCA 체결로 이어진 협상 과정에서도 기존 NAFTA를 폐기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캐나다와 멕시코를 압박한 바 있다. 당시에도 실제 탈퇴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거셌고, 결과적으로 셈법이 달라진 양측이 양보를 통해 새로운 협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북미 양국의 관세 문제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로 지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마약 밀매와 불법 이민 등을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가, 이후 USMCA를 준수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면제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무역협정 준수 여부와 관세 혜택을 연계해 협정 이행을 압박하는 구조를 사실상 제도화한 셈이다.
그러나 다른 주요 교역 상대국과 달리 멕시코와 캐나다와의 관세 협상은 아직 최종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USMCA 이행 평가 및 재협상 구상과 결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북미 역내 기업들의 교역과 투자 결정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 입장에서는 협정 재협상을 수용하더라도 관세 리스크가 동시에 상존할 수 있어, 양 방향에서 압박을 받는 형국이다.
멕시코와 캐나다에서는 미국이 내년 이행 검토 과정에서 원산지 기준, 노동 규범, 환경 규제, 디지털 무역 등 핵심 의제를 다시 꺼내 들 가능성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두 나라는 자국 제조업과 농업, 에너지 산업에 미칠 파장을 계산하며, 미 의회와의 소통 채널을 통해 협정 안정성 보장을 모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미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협정 자체가 흔들릴 경우 투자 이전과 생산 차질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제 통상 전문가들은 USMCA 탈퇴 가능성 언급과 양자협정 분할 구상이 북미 역내 탈세계화 흐름을 강화하는 신호로 보고 있다. 미국이 양자협정 중심의 협상 틀을 선호할 경우, 멕시코와 캐나다는 협상력에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 반도체, 제약 등 전략 산업의 가치사슬이 미국 본토 중심으로 재편되면, 3국 간 상호 보완적 분업 구조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워싱턴과 오타와, 멕시코시티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발언’이 협상 수위를 높이기 위한 전술적 카드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신중론이 공존한다. 실제 탈퇴는 미 의회와 산업계, 금융시장의 강한 반발을 야기할 수 있고, 북미 역내 안보·이민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도 농업·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협정 안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무역대표부 수장이 공식 석상에서 탈퇴와 구조 개편 가능성을 동시에 거론한 만큼, 내년 USMCA 이행 검토를 둘러싼 정치·통상 변수가 한층 복잡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언이 실제 협정 파기 여부와 무관하게 북미 지역 기업들의 투자 계획과 공급망 전략 수정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향후 협상 전략과 USMCA의 지속 가능성이 북미 및 글로벌 무역 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