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표적 미토콘드리아 연구…임성기재단, 전신경화증 공략 지원
희귀난치성질환을 겨냥한 미토콘드리아 표적 연구가 본격적인 재단 지원을 받으며 속도를 낼 전망이다. 임성기재단이 전신경화증에서 특정 단백질과 세포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의 병적 변화를 동시에 겨냥하는 연구를 3년 장기 과제로 선정하면서, 기존에 섬유화 지연에 머물렀던 치료 전략이 질환의 근원을 겨냥하는 정밀 표적 치료로 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지원이 희귀질환 영역에서 기초·중개 연구를 촉진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임성기재단은 27일 2025년도 희귀난치성질환 연구지원 사업 대상자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조미라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원 규모는 연 2억 원씩 3년간 총 6억 원으로, 희귀질환 분야에서 비교적 장기이자 대형에 속하는 연구비다. 한미그룹 창업주 고 임성기 선대회장의 신약 개발 철학을 계승해, 환자 수가 적어 상업성이 낮은 영역의 연구를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조미라 교수팀의 과제는 전신경화증에서 CD38 단백질이 과발현된 면역세포와 섬유화세포에서 발생하는 미토콘드리아 병증을 규명하고, 이를 조절할 병합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전신경화증은 피부와 장기에 비후와 경화, 염증을 일으켜 호흡부전과 심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희귀난치성질환이다. 현재는 섬유화 진행을 늦추는 약제에 의존하는 수준이라 질병 경과를 근본적으로 억제하지 못하고 있고, 국내외를 통틀어 표준화된 근본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다.
이번 연구의 기술적 핵심은 면역세포인 T세포와 B세포, 그리고 섬유아세포를 표적세포로 삼아, 세포 내 역전자 전달로 설명되는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과 CD38 단백질의 작용 메커니즘을 세밀하게 해부하는 데 있다. 역전자 전달은 미토콘드리아와 세포핵 사이에서 신호가 역방향으로 전달되며 에너지 대사와 염증 반응을 왜곡시키는 현상을 뜻한다. 조 교수팀은 CD38 과발현이 이런 역전자 전달을 어떻게 촉발하거나 증폭시키는지 규명하고, 염증과 섬유화를 동시에 줄일 수 있는 병합치료 조합을 설계해 전임상 단계까지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연구는 기존 전신경화증 치료 접근이 주로 면역억제제 등 단일 타깃 약물에 집중됐던 한계를 넘어, 다중 표적 기반 병합치료 전략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 특징이다. CD38을 포함한 표적 분자 조합과 미토콘드리아 기능 회복을 병렬로 겨냥해, 섬유화 조직의 진행을 늦추는 수준을 넘어 손상된 조직의 재생과 회복까지 동시에 노린다는 구상이다.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정상화하면 염증·섬유화 활성 반응이 함께 조절될 수 있어, 임상 단계에서 약물 반응 편차를 줄이고 효과 발현 속도를 높일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성과 상용화 관점에서 보면, 전신경화증은 환자 수가 많지 않은 전형적인 희귀질환이지만, 치명률과 삶의 질 저하가 크기 때문에 혁신 치료제에 대한 지불 의사가 높은 영역이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자가면역 희귀질환과 섬유화 질환을 차세대 포트폴리오 축으로 키우는 추세여서, 미토콘드리아 병증과 CD38 신호를 동시에 겨냥하는 새로운 작용 기전은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 협력의 후보가 될 수 있다. 다만 기초·중개 연구 단계에서 실제 임상 효능과 안전성을 예측하기 위한 동물 모델, 바이오마커 개발이 병행돼야 상용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토콘드리아 기능 이상을 표적하는 대사 조절 약물과, CD38을 겨냥하는 항체 치료제가 혈액암 분야를 중심으로 개발·승인이 이뤄진 상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들 약물의 기전 연구를 바탕으로 자가면역질환과 섬유화 질환으로 적응증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희귀 자가면역질환을 겨냥한 정밀 면역조절제 개발이 초기 단계여서, 이번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 전신경화증뿐 아니라 다른 섬유화성 희귀질환으로 응용 범위를 넓힐 여지도 있다.
임성기재단은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크지만 환자 수가 적어 상업성이 떨어지는 희귀질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2022년부터 전용 사업을 가동해 왔다. 올해는 신경계통, 근육골격계통 및 결합조직 등 2개 희귀질환군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했고, 이 가운데 신경계통 희귀질환 연구 1개 과제만 우선 선정했다. 재단은 내년에 근육골격계통 및 결합조직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한 기초 및 임상 연구 과제를 다시 공모할 계획이다. 전신경화증처럼 전신성 자가면역질환이 근육·관절·피부·장기를 아우르는 다장기 손상을 유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연구는 차기 공모 과제들과의 연계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조미라 교수는 병합치료 전략에 대해 다중 표적을 통해 근본 원인을 차단하고 손상 조직의 재생과 회복을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전신경화증 치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재단이 제공하는 3년간의 안정적 지원이 미토콘드리아 병증과 면역·섬유화 네트워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토대가 될 경우, 후속 AI 기반 후보물질 탐색이나 정밀의료 진단 기술과의 융합 연구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희귀질환 연구 지원이 실제 임상 개발 단계까지 이어져, 국내 희귀질환 신약 개발 생태계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