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항공기부품 관세철폐 합의…우주항공업계 수출동력 기대
항공기 및 부품에 대한 한미 간 관세가 사실상 0퍼센트 체제로 전환되면서 국내 우주항공 제조업계에 새로운 수출 동력이 열리고 있다. 한국우주항공산업협회는 미국 연방관보가 한국산 항공기와 부품에 부과되던 15퍼센트 관세를 전면 철폐한다고 공표한 데 대해 공식 환영 입장을 내고, 비용 구조 개선과 공급망 재편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미국과의 전략적 투자 협력 강화와 더불어 우주항공 생태계 전반의 글로벌 가치사슬 편입을 가속하는 신호로 보고 있다.
연방관보에 따르면 항공기 및 부품에 대한 관세 인하와 철폐는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 서명 시점인 11월 14일자로 소급 적용된다. 양국 정부는 당시 관세 협상 결과를 담은 공동 설명자료를 별도 배포하며, 항공우주 분야를 핵심 전략 산업으로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선적된 물량에도 소급해 인하된 세율이 적용돼, 하반기 실적과 내년도 수주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다.

이번 결정은 자동차와 항공 부문을 동시에 아우르는 한미 통상 패키지 조정의 일환으로도 해석된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12월 1일 성명을 통해 한미 무역 합의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11월 1일부터 15퍼센트로 인하하고, 항공기 부품 관세는 완전히 철폐하며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일본과 유럽연합 수준으로 정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항공기와 부품은 장기 공급계약과 정비 부품 거래가 반복되는 B2B 시장인 만큼, 관세 0퍼센트 전환은 단순 세율 조정 이상의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공기 부품 산업은 고부가가치 정밀 제조와 소재·엔지니어링 기술이 결합된 분야로, 관세는 곧바로 단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기존 15퍼센트 관세는 미 항공사와 기체 제조사가 한국산 부품을 채택하는 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관세 철폐로 동일 품질 기준에서 한국산 부품은 미국·유럽 경쟁사와 같은 조건에서 가격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단가가 높고 교체 주기가 짧은 엔진 관련 부품이나 복합소재 구조체처럼 수익성이 큰 품목에서 수출 확대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공급망 측면에서도 정책 효과가 예상된다. 글로벌 항공우주 산업은 코로나19 시기 생산 차질과 물류 병목을 경험하면서 부품 소싱 다변화와 재고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이번 관세 철폐로 미국 완제기 제조사와 정비 전문업체는 한국을 안정적인 서플라이 허브로 활용할 유인이 커진다. 관세 부담이 사라지면 미국 내 조립 공장과 아시아 생산거점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원 공급 전략을 설계하기 용이해져, 국내 부품사들의 북미 중장기 공급계약 확보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
국내 산업계는 투자 재원과 기술개발 여력 확대 효과에도 주목하고 있다. 관세 15퍼센트가 제거되면 동일 수출 물량 기준으로 확보되는 마진이 커져, 중소·중견 부품사가 항공용 첨단 소재, 경량화 구조 설계, 전기추진 시스템 등 차세대 기술에 재투자할 재무 여력이 생긴다. 우주발사체와 위성 플랫폼에 쓰이는 고정밀 가공 부품 역시 항공기 부품과 생산 인프라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관세 철폐가 결과적으로 국내 우주산업 밸류체인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한국 기업의 조건을 일본과 유럽연합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성격을 갖는다. 미국은 그간 자국 산업 보호와 전략적 동맹국 간 형평성을 고려해 항공우주 분야 관세를 차등 운용해 왔다. 유럽 주요 부품사는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 체계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왔는데, 한국 기업 역시 동등한 관세 조건을 확보함으로써 기술력과 납기, 품질에서 차별화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든 셈이다. 업계에서는 미·중 전략 경쟁 심화로 중국 업체에 대한 견제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 조정이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한다.
정책·제도 측면에서는 이번 합의가 항공·우주·방산 등 인접 분야 협력 확대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항공기 및 부품은 통상 민간·군수 수요가 혼재하는 전략 품목인 만큼, 관세 조정 과정에서 양국 정부 간 외교·안보 논의가 병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방산 수출과 우주개발 협력,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 등에서도 유사한 관세·비관세 장벽 완화 논의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국내 산업 보호와 시장 개방 간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내부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김민석 한국우주항공산업협회 부회장은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며, 항공기 및 부품 관세 철폐가 비용 절감과 공급망 리스크 완화, 투자 유치 촉진을 통해 국내 항공 제조 산업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정책 결정자와 업계 현장 간 소통을 강화해 이번 합의가 회원사의 실질적인 수출 확대와 고용 창출로 연결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관세 철폐 효과가 실제 계약과 물량 증가로 이어질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기술·품질 경쟁력 제고가 얼마나 빠르게 이뤄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