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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안전성평가·AI지원 확대…식약처, 글로벌 수출 2막 연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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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가 기술 기반 수출산업으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출국으로 성장한 가운데, 각국의 안전 규제와 인증 요건이 강화되면서 품질·규제 대응력이 핵심 경쟁요소로 떠오른 상황이다. 정부는 화장품 안전성 평가 도입과 인공지능 기반 신속 제품화 지원, 할랄 인증 지원 등 규제혁신 패키지를 통해 K뷰티의 글로벌 신뢰도와 수출 저변을 동시에 넓히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K화장품을 단순 제조 강국에서 규제과학과 디지털 역량을 갖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7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 제6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K뷰티 안전·품질 경쟁력 제고 방안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이행 방향을 발표했다. 지난해 K화장품 수출액은 102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수출 대상도 중국 중심에서 북미, 유럽, 중동, 동남아, 일본 등으로 다변화됐다.  

하지만 주요 수출국들이 화장품 안전성 평가 의무화, 할랄 인증 표시 강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면서 단순 수출 확대 전략만으로는 성장 둔화 위험이 커지는 상황이다. 식약처는 이에 대응해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에 맞춘 안전·품질 인프라 확충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지원체계를 제시했다.  

 

핵심 축은 내년부터 도입되는 화장품 안전성 평가제도다. 제품의 유해성 여부를 과학적으로 검증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안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으로, 관련 기술 지원과 국제 기준 선도를 전담할 화장품안전정보센터 설립도 추진된다. 이 센터는 시험법 개발, 위험평가 방법 고도화, 해외 규제 동향 분석을 통합 지원하는 허브 역할을 맡게 된다.  

 

제조 현장의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원도 병행된다. 중소·영세업체를 중심으로 우수 화장품 제조·품질관리기준 GMP 인증과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을 돕는 프로그램을 확대해, 글로벌 브랜드와 동등한 품질관리 체계를 가진 생산기지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소비자 접근성 측면에서는 e라벨 표시 제도를 도입해 정보 격차를 해소한다. 포장에 인쇄된 정보만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던 성분·사용법·주의사항을 디지털 라벨과 연동하고, 취약계층을 위해 점자와 수어 영상 정보 제공을 넓혀 실질적인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방향이다.  

 

글로벌 규제 외교와 정보 인프라 강화도 포함됐다. 식약처는 GP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흥 수출국 규제당국을 초청하는 글로벌 화장품 규제혁신 포럼을 개최해 양자협력과 양해각서 체결을 확대하고, 규제 협력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한다. 현재 해외 법령과 수출 안내서, 인허가 교육을 제공 중인 온라인 화장품 글로벌 규제조화 지원센터는 콘텐츠와 기능을 확대한 형태로 개편될 예정이다.  

 

성장성이 큰 이슬람 시장을 겨냥한 맞춤 전략도 눈에 띈다. 할랄 요건을 충족하는 원료와 제조사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기업이 적합한 공급망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수출국별 인증 요건에 맞춘 컨설팅을 제공한다. 동시에 해외 할랄 인증기관과의 상호인정을 추진해 중복 심사 부담과 인증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협력을 강화한다.  

 

브랜드 신뢰를 떨어뜨리는 위조화장품 대응도 한층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정부와 업계가 참여하는 위조화장품 유통 근절 민관 협의회를 구성해 관계 부처 합동 대응체계를 만들고, 유통 실태 조사를 통해 취약 유통망을 파악한 뒤 위조상품 방지 기술을 제공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디지털 기술 활용 측면에서는 인공지능을 전면에 내세운다. 기능성화장품 인허가 과정에서 제출 서류의 요건과 형식을 AI가 사전에 검토해 보완 사항을 자동 안내하고, 민원 서류도 기계적으로 점검해 심사 대기 시간을 줄이도록 설계한다. 특히 수출국별 상이한 규제와 인허가 정보를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로 정리해 맞춤 검색을 지원하는 생성형 AI 코스봇을 운영, 기업이 각국 규제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응전략을 세울 수 있게 돕는다.  

 

규제 프로세스 자체도 합리화된다. 고체형 기능성화장품 등 신규 제형에 대해서는 별도 기준을 마련해 심사 기간을 기존 60일 수준에서 2~3일로 크게 단축하고, 효능과 제형, 주성분이 동일한 상태에서 착향제나 착색제만 바꾸는 맞춤형 기능성화장품은 품목 보고 절차를 간소화해 제품 출시 속도를 높인다.  

 

장기적으로는 규제과학 인력 양성이 뒷받침된다. 식약처는 화장품 안전성 평가, 해외 인허가, 수출 규제 대응을 전담할 화장품 규제과학 전문가 RA 교육을 체계화해, 기업 내부에서 국제 규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RA는 각국 법규 분석과 인허가 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전문인력으로, 정교한 규제 대응이 요구되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다.  

 

업계도 이번 정책 방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조임래 코스메카코리아 대표이사는 K화장품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화장품 안전성 평가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하며, 산업 전반의 신뢰도 제고 필요성을 짚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K화장품의 글로벌 위상을 견고히 하려면 품질과 안전 기반을 강화해 소비자 신뢰를 공고히 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며, 정부가 규제혁신과 글로벌 규제 외교를 통해 산업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새 제도가 실제 현장에 안착해 수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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