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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좀으로 1만배 민감도” UNIST 폐암 진단, 미국 공공펀딩 돌파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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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조기 진단의 정밀도를 최대 1만 배까지 끌어올렸다는 국내 대학발 기술이 미국 공공 연구자금까지 확보하며 글로벌 상용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혈액 한 방울로 암 유래 엑소좀을 손상 없이 포집해 유전신호를 읽는 액체생검 기술로, 기존 순환 종양 DNA 기반 분석보다 민감도를 크게 높인 점이 핵심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미국 핵심 암 연구기금 진입을 “한국발 액체생검 플랫폼의 글로벌 레퍼런스 확보 단계”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울산과학기술원에 따르면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조윤경 교수 연구실 기술을 기반으로 미국에 설립된 스타트업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가 최근 텍사스주 암 예방 연구소 지원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원 프로그램은 비소세포폐암 조기 판별과 치료 과정 모니터링 기술을 중심으로 평가가 진행됐고,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는 진단 디바이스 분야에서 텍사스 지역 1위로 선정됐다. 회사는 향후 3년간 402만 달러, 약 55억 원 규모의 사업화 재원을 배정받게 됐다.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가 개발 중인 플랫폼 EDM은 액체생검 방식의 폐암 조기 진단 및 치료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핵심은 혈액 속에 존재하는 엑소좀을 물리적 스트레스나 화학 처리 없이 포집해, 그 안에 담긴 암 관련 유전신호를 실시간에 가깝게 분석하는 구조다. 엑소좀은 세포가 분비하는 지름 수십 나노미터 수준의 소포체로, 암세포에서 분비된 엑소좀에는 종양의 유전자 변이와 단백질 정보가 풍부하게 담겨 있어 ‘액체 조직검사’의 주요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액체생검의 주류인 순환 종양 DNA 검사는 혈액 내 떠다니는 암 유래 DNA 조각을 추출해 변이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암세포 사멸 이후 방출된 DNA를 측정하기 때문에 암세포 활성도가 낮거나 초기 단계에서는 검출 한계가 높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는 엑소좀 표면과 내부 구조를 최대한 온전하게 보존하는 포집 기술을 적용해, 같은 혈액량으로도 암 신호를 최대 1만 배까지 민감하게 포착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번 기술은 초기 발병 탐지에서 항암제 반응 모니터링에 이르는 전 주기에서 민감도와 특이도를 동시에 유지한 점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조기 암 단계처럼 암세포 수가 적은 상황에서도 엑소좀 기반 분석으로 신호를 잡아내고, 치료 과정에서 종양 부담이 줄어드는 미세한 변화도 추적하는 구조다. 분석 결과는 통상 하루 이내에 제공 가능해 항암제 선택과 교체, 병용 요법 설계 의사결정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메디케어 기준 기존 검사 대비 약 80퍼센트 수준으로 절감이 가능한 설계로 알려졌다.

 

EDM 플랫폼 구현의 기술적 차별점은 엑소좀을 분리하는 미세유체공학 기반 공정에 있다. 혈액을 디스크 형태의 칩에 주입하면, 회전력과 미세 채널 설계에 따라 크기와 밀도, 표면 특성에 기반해 엑소좀을 선택적으로 분리하는 원리다. 기존 원심분리 방식은 고속 회전 과정에서 엑소좀 구조 손상이 발생해 내용물 분석의 재현성을 떨어뜨리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랩온어디스크 개념을 적용한 이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낮은 물리적 스트레스를 유지하면서도 자동화에 유리해, 대량 검체 처리와 검사실 워크플로 통합에 강점을 가진다.

 

시장성 측면에서 폐암은 액체생검 수요가 가장 큰 암종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폐암 환자 대상 혈액 기반 유전자 검사로 표적치료제 적합성을 판단하는 사례가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비소세포폐암은 진단 시점에 이미 전이 단계에 있는 경우가 많아 조직생검 부담이 크고, 반복 조직 채취가 어려운 환자가 적지 않다.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의 EDM과 같은 고감도 액체생검 플랫폼은 조직 확보가 어려운 환자에서 치료 옵션을 넓히고, 초기 스크리닝과 치료 반응 조기 판별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액체생검 기술 경쟁이 이미 치열하다. 미국에서는 가던트헬스, 파운데이션메디슨 등 기업이 ctDNA 기반 플랫폼으로 시장을 선점했고, 일부 업체는 순환 종양세포 분석을 병행하는 멀티 분석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엑소좀 기반 진단에 특화된 기업들도 존재하지만, 특정 바이오마커에 한정된 검사 패널이 많은 편이다.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는 엑소좀 구조 보존과 자동화 장비를 결합해 다중 유전자 신호를 동시에 탐지할 수 있는 ‘플랫폼형’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노리는 모습이다.

 

공공 연구기금 구조에서도 경쟁 강도는 상당하다. 텍사스주 암 예방 연구소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암 연구기관으로, 올해만 73개 프로젝트에 총 1억5400만 달러를 배분했다.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는 이 가운데 텍사스 지역 진단과 디바이스 분야 지원 기업 중 1위에 이름을 올리며 기술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미국 공공 연구비 수주는 이후 민간 투자 유치와 대형 병원 네트워크 진입의 가교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상용화 단계 진입을 위한 규제 전략도 병행되고 있다.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는 올해 텍사스주 시더파크시에 클리아 인증 검사소를 구축했다. 클리아 인증은 미국 내 임상검사실 운영에 필수인 품질 기준으로, 해당 인증을 통해 FDA의 정식 의료기기 허가 이전에도 실험실 개발검사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실제 검체 데이터를 축적하고, 검사 프로토콜을 고도화하면서 초기 매출까지 창출하는 구조를 설계한 셈이다.

 

향후에는 시약과 장비를 패키지화한 형태로 FDA 의료기기 허가를 추진해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해외 검사실로 공급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텍사스 주립대 의과대학과의 임상 협력, 현지 기업과의 공동 개발을 병행하며, 폐암 외 다른 고형암과 면역질환, 신경질환 등으로 적응증 확장 가능성도 타진하는 중이다. 엑소좀은 암뿐 아니라 다양한 질환에서 세포 간 신호전달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바이오마커 탐색만 성공한다면 진단 포트폴리오 다각화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기업의 기술적 출발점은 2018년 설립된 엑소좀 전문기업 랩스피너로 거슬러 올라간다. 랩스피너는 2019년 조윤경 교수가 보유한 랩온어디스크 기반 엑소좀 분리기술을 이전받아, 시제품 수준에서 임상 적용이 가능한 진단 플랫폼으로 끌어올리는 연구개발을 이어왔다. 이후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해 별도 법인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를 설립했고, 이번 텍사스 공공 펀딩 확보로 사업화 단계가 가속화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김영식 울산과학기술원 산학협력단장은 이번 선정을 두고 울산과학기술원 기술이 창업을 거쳐 해외에서 성장하는 선순환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강소특구 지원을 기반으로 미국 공공지원을 획득한 이번 사례가 울산과학기술원 창업기업들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의 엑소좀 기반 액체생검 플랫폼이 미국 임상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폐암을 넘어 정밀의료 전반의 판도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눈여겨보고 있다.

신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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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디스커버리테크놀로지스#unist#cp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