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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절벽에 약가압박"…빅파마 3만명 감원, 신약투자 지형 바뀐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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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 산업이 구조조정의 겨울을 맞고 있다. 특허 만료가 몰려오는 특허 절벽과 각국 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이 겹치면서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투자 전략은 고위험 혁신보다는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플랫폼과 모달리티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력 구조조정이 단기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신약 개발의 주도권을 중소 바이오텍으로 이동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9일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이 발간한 제약 바이오 2026 연간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업계 감원 규모는 이달 초 기준 3만282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해고 건수 1만9381명을 이미 크게 넘어섰다. 특허 만료에 따른 매출 감소 우려와 약가 인하 정책 확대에 대응해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구체적으로 노보노디스크는 전체 직원 7만8400명 중 약 9000명 감원을 발표했다. 감축을 통해 내년 말까지 연간 12억4000만 달러, 약 1조8176억원 수준의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비만과 당뇨 치료제 성장으로 외형은 확대됐지만, 장기적으로는 포트폴리오 재편과 효율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머크는 전 세계적으로 약 6000명 감원 계획을 내놨다. 이는 전체 인력의 약 8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 측은 2027년까지 약 30억 달러, 약 4조3992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더나는 팬데믹 이후 백신 수요가 정상화되면서 전 세계 인력의 약 10퍼센트를 감축해 직원 수를 5000명 미만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2027년까지 약 15억 달러, 약 2조1996억원의 운영 비용 절감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구조조정 흐름은 연구개발 전략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허 연구원은 특허 절벽과 약가 인하 시대에 들어서면서 고위험 후보를 길게 끌고 가는 전략보다는,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영역에서 단기 투자를 집중하는 방향으로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혁신적 기전의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이나 완전히 새로운 모달리티보다는 이중항체, 항체 약물접합체로 불리는 ADC, RNA 기반 치료제, 제형 변경 플랫폼 등 임상 및 상업화 성공 경험이 쌓인 영역에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중항체는 서로 다른 두 표적을 동시에 겨냥하는 항체로, 기존 단일 항체보다 효능을 높이거나 내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아 왔다. ADC는 항체에 세포 독성 약물을 결합해 암세포에 약물을 정밀 전달하는 형태로, 이미 허가 사례가 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핵심 항암 카테고리로 올라선 상태다. RNA 치료제는 메신저 RNA나 소형 간섭 RNA 등을 활용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희귀질환과 감염병 분야에서 상업화 경험이 축적돼 있다. 이들 기술은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전보다 개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평가받는다.

 

빅파마의 포트폴리오 전략도 내부 개발 일변도에서 외부 파트너링과 인수합병을 절반 수준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허 연구원에 따르면 대형 제약사는 내부 연구개발과 외부 라이선스 도입 비중을 각각 50퍼센트 안팎으로 맞추며 리스크 분산과 신약 확보 속도 개선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실패 확률이 높은 초기 단계 연구를 모두 떠안기보다는, 검증된 파이프라인을 사들이거나 공동 개발을 통해 후기 임상과 상업화 단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조다.

 

내부 개발 비중이 높았던 화이자는 올해 하반기 멧세라를 인수하며 지질 관련 질환 분야 파이프라인을 강화했다. 노바티스도 애비디티를 인수해 RNA 기반 정밀 치료 영역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단일 품목에 의존하던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특허 만료 공백을 메울 차세대 블록버스터 후보를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조달하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반면 전체 글로벌 파이프라인에서 대형 제약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상위 10개 빅파마가 보유한 파이프라인은 전체의 약 5퍼센트에 그치고, 상위 25개 회사가 합산해도 1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신약 개발 프로젝트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은 중소 규모 바이오텍과 신흥 바이오 기업으로 분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초기 타깃 발굴과 전임상, 초기 임상은 바이오텍이 주도하고, 후기 임상과 글로벌 상업화는 빅파마가 맡는 이원화 구조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허 연구원은 올해 들어 소형 바이오텍의 독자 개발 비중이 감소하는 추세에 주목했다. 독자 개발 비중이 낮아진다는 것은 파트너링, 공동 개발, 라이선스 아웃과 같은 협력 형태가 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자본 비용이 높고 규제 리스크가 큰 환경에서 소형 기업이 후기 임상과 상업화를 단독으로 끌고 가기보다, 임상 1상이나 2상 단계에서 대형 제약사와 손잡고 리스크와 비용을 나누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분업 구조가 굳어질 경우 바이오텍의 초기 연구가 사실상 빅파마의 외주 연구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금리와 거시 환경 변화도 신약 개발 생태계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보고서는 내년 대외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주요국에서 금리 인하가 이어질 경우 바이오텍 지수가 회복세를 보이고 인수합병 거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면 벤처 투자와 바이오 전문 펀드의 신규 자금 유입이 늘고, 대형 제약사는 향후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자산을 서둘러 인수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

 

허 연구원은 내년 금리 인하가 본격화될 경우 바이오텍의 기업 가치가 높아질 여지가 있어, 빅파마가 지금 시점에서 인수 결정을 서두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빅파마가 바이오텍을 인수할 때 지급하는 프리미엄이 증가하는 흐름이며, 인수 대상 기업을 둘러싼 경쟁 입찰과 공격적인 인수 분쟁도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과 외부 파이프라인 확보 전략이 중장기적으로 연구 인력 재편과 기술력 쏠림을 심화시킬 여지도 있다고 본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과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인 혁신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제약바이오 산업이 고도화된 규제와 자본 시장의 압박 속에서 어느 수준의 위험을 감내하며 혁신에 투자할지, 그리고 빅파마와 바이오텍 간 역할 분담이 어떤 균형점에 도달할지에 따라 향후 10년 신약 개발 지도 역시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구조조정과 투자 전략 전환이 실제 시장과 환자 치료 패턴 변화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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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파마#노보노디스크#바이오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