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유묵 ‘녹죽’ 첫 공개의 순간→광복 80주년의 빛을 품다
푸른 대나무의 품격처럼, 한 줄기 바람이 고요히 역사를 어루만진다. 금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을 앞두고 남긴 유묵 ‘녹죽’이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 그림자에 머물렀던 한 점의 유산이,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민족의 기억을 깨운다.
‘녹죽’ 유묵은 일본의 한 소장자에게서 세상을 거쳐, 올해 4월 서울옥션 경매를 통해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딸 구혜정 여사의 손에 안기게 됐다. 구혜정 여사의 아들 이상현 대표가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로서 수년간 이어온 유물 보존의 의지는,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금 빛을 발한다. 실물로 대중 앞에 선 ‘녹죽’ 위에는 오언시집 ‘추구’ 가운데 한 구절이 펼쳐지며, 안중근 의사의 절개와 기개가 먹빛으로 서려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녹죽'[태인 제공]](https://mdaily.cdn.presscon.ai/prod/129/images/20250806/1754457728287_13573463.jpg)
이번 특별전에는 ‘녹죽’과 더불어 보물로 지정된 또 하나의 유묵 ‘일통청화공’도 나란히 전시된다. 이 작품은 1910년 중국 뤼순 감옥에서 일본인 간수에게 건넨 글씨로, ‘경술삼월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하다’란 문구와 함께 손바닥 도장이 깊이 남아 있다. 2022년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정된 이 보물은 구혜정 여사의 남편 이인정 회장이 2017년 한국 경매장에서 낙찰받은 뒤, 긴 시간 가족의 손에서 지켜져 왔다.
두 점의 유묵이 조우하는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은 근대기 독립운동가의 삶과 신념이 어떻게 예술과 역사의 맥락으로 이어지는가를 조명한다. 관람객들은 안중근 의사의 붓 끝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울림과, 한 줄기 대숲에서 퍼지는 절개의 숨결을 따라 역사의 숨은 결을 만난다.
이 특별전의 여정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국립합창단 공연으로 확장된다. 오는 21일 펼쳐질 ‘뮤지컬 영웅, 국립합창단과 만나다’ 공연에서 뮤지컬 ‘영웅’ 속 안중근 역으로 사랑받은 배우 양준모가 무대에 오른다. 공연에 앞서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부장이 ‘녹죽’ 유묵이 지닌 의미와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청중과 나눈다. 국립합창단 이사장 이상현 대표의 참여 아래, 전시와 음악이 하나의 서사처럼 연결돼 역사적 의미를 드높인다.
이상현 대표는 “독립운동가의 숭고함을 문화유산과 예술이 함께 일깨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돌며,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무대 위에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서정과 신념, 그리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자유의 꿈을 되새긴다.
이번 ‘빛을 담은 항일유산’ 특별전은 8월 12일부터 10월 12일까지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다. 계절이 무르익는 시간 동안, 전시와 공연은 우리 모두에게 역사의 무게와 자유의 소중함을 조용히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