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웹3에 10조 원 베팅”…네이버·두나무, 한국판 메가핀테크로 승부수
인공지능과 웹3를 결합한 초대형 금융 플랫폼 구상이 공개되며 K핀테크 지형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이버와 두나무가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해 기술, 결제, 디지털자산 역량을 한 몸처럼 묶는 전략을 내놓으면서, 국내 디지털 금융 산업 전반에 구조 변화를 예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플랫폼 간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번 결합이 정책과 시장 모두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네이버, 네이버파이낸셜, 두나무는 성남 네이버 1784 사옥에서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기업융합 방향과 글로벌 전략을 발표했다. 전날 양측 이사회에서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 간 주식 교환 계약을 의결했으며, 두나무는 네이버가 지배하는 구조로 편입될 예정이다. 이로써 세 회사는 하나의 전략 단위로 움직이며 글로벌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에 본격 뛰어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 송치형 두나무 회장, 김형년 부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오경석 두나무 대표, 박상진 네이버파이낸셜 대표 등 양사 최고 경영진이 총출동해 이번 구상을 직접 설명했다. 경영진이 제시한 그림은 네이버의 검색과 AI 인프라, 네이버파이낸셜의 연간 80조 원대 결제망과 3,400만 명 이상 사용자, 두나무의 블록체인·웹3 기술과 디지털 자산 거래 역량을 결합해 지급결제를 넘어 생활 전반을 포괄하는 글로벌 금융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해진 의장은 네이버의 AI 역량과 웹3 기술 결합이 차세대 디지털 금융 시장 선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디지털 금융 산업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빠른 의사결정 체계와 아직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모델이 생존 조건이라고 짚었다. 검색과 포털 중심이던 네이버를 AI 중심 기술 회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두나무의 블록체인 역량을 더해 새로운 성장축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이 담겼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최수연 대표는 이번 기업융합 배경을 기술적 모멘텀에 둔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이 대중 확산 국면에 들어서고 AI가 스스로 판단해 업무를 처리하는 이른바 에이전틱 AI 단계에 진입하는 시점이 맞물린 지금이 혁신을 꺼낼 창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사용자, 데이터, 기술, 서비스, 자본력이 일체화된 구조를 만들겠다고 언급하며, 합병이 완료되면 글로벌 진출을 조직 문화의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두나무 측은 이번 결합을 장기적인 디지털 자산 질서 재편의 출발점으로 규정했다. 송치형 회장은 세 회사가 함께 AI와 블록체인이 만나는 차세대 금융 인프라를 구축해 지급결제에 머물지 않는 생활 밀착형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김형년 부회장은 다수 자산이 앞으로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 형태로 유통될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번 기업융합이 국경이 약화된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경석 대표는 이번 거래를 위기와 기로에 선 글로벌 기술 변곡점을 도약 기회로 바꾸는 시도로 정의했다.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은 우선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계열 편입과 사업 시너지 극대화에 집중하고, 복잡한 지배구조 개편보다는 글로벌 시장 진출과 자본시장 접근성 제고에 힘을 모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거대 구조조정보다 단기간 성과가 가능한 기술·서비스 결합과 해외 공략에 초점을 맞춘 전략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투자 계획 규모도 눈길을 끈다. 네이버와 두나무는 향후 5년간 AI와 웹3 생태계 육성에 1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내부 인프라 확충을 넘어 국내 개발자와 파트너 기업이 참여하는 개방형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AI와 웹3 결합 서비스가 상용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판단 아래, 국내 기업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인프라 차원에서 판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셈이다.
다만 이번 결합이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제도적 관문을 넘어야 한다. 네이버 이사회가 두나무를 자회사 또는 계열사로 편입하는 안건을 의결했지만, 앞으로 정부 심사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절차가 마무리된다. 주주총회는 내년 5월 열릴 것으로 예상되며,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해관계자 설득과 규제 환경 점검이 향후 수개월 동안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디지털 금융 업계에서는 이번 결합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 각자 영역을 구축해온 네이버와 두나무가 검색과 AI, 간편결제, 디지털자산을 한 플랫폼 안에 묶어 한국판 메가핀테크를 표방한 것은 금융 서비스 경험의 전면 개편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다만 빅테크와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규제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실제 서비스 구조와 리스크 관리 체계가 규제 당국 기준을 어떻게 충족할지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AI와 웹3 결합이 자산 토큰화, 맞춤형 자산관리, 국경 없는 지급결제 등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열 수 있지만, 동시에 소비자 보호와 자금세탁 방지 등 규제 이슈를 동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규모 투자와 기업융합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서비스 혁신과 생태계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규제와 혁신의 균형,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네이버와 두나무가 제시한 10조 원 투자와 글로벌 진출 구상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국내 핀테크 산업 전반의 경쟁 구도와 규제 논의 지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향후 정책 방향과 시장 반응은 정부 심사와 주주총회 결과, 그리고 실제 출시될 서비스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이며, 디지털 금융 산업의 시선도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