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호주로 보내라"…윤석열 추가 기소, 전 안보·법무·외교라인 동시 재판행
범인도피 의혹과 책임 공방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정치권 전면전에 번지고 있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이른바 호주 도피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고위 인사들을 대거 기소하면서다.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2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범인도피, 직권남용,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피의자는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심우정 전 법무부 차관, 장호진 전 외교부 1차관,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 5명이다.

쟁점이 된 호주 도피 의혹은 2024년 3월 출국금지 상태였던 이종섭 전 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된 뒤 곧바로 출국해 부임했다가 여론 악화 속에 11일 만에 귀국한 사건이다. 당시 이 전 장관은 2023년 7월 해병대 채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받는 상황이었다.
특검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채 상병 사망 넉 달 뒤인 2023년 11월 19일 이 전 장관을 호주로 사실상 도피시키기 위해 대사 임명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2023년 8월부터 대통령 격노설 등이 제기되며 수사외압 의혹이 확산됐고, 이후 자신과 직접 통화한 이 전 장관이 공수처에 고발되자 수사 확장을 우려해 해외 대사 임명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 대한 공수처 수사가 진전되면 자신이 직접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취지로 호주대사 임명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특검 관계자는 이종섭 전 장관의 해외 부임 절차가 대통령실, 외교부, 법무부의 긴밀한 공모 속에서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지시 이후 컨트롤타워 역할은 국가안보실이 맡았다.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은 2023년 12월경 윤 전 대통령 의중을 반영해 장호진 전 외교부 1차관에게 이 전 장관을 2024년 1월까지 호주대사로 보내는 절차에 착수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장 전 차관은 이를 외교부 인사 라인에 그대로 전달했다.
문제는 당시 현직 호주대사의 임기가 약 2년 남아 있던 상황에서 별다른 교체 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검에 따르면 장 전 차관은突발적인 단독 교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인사 담당자에게 호주와 모로코 대사 인사를 묶어 빠르게 진행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은 이 지시가 이후 인사 절차 전반을 밀어붙이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외교부 공관장자격심사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특검팀은 외교부가 공관장 자격심사 운영세칙에 따라 요구되는 외국어 능력 검정점수 없이 이 전 장관에게 자격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심사에 앞서 이미 심사 결과서에 이 전 장관을 적격으로 기재해 둔 뒤, 이후 심사위원들의 서명만 받는 방식으로 형식적 절차를 마무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인사 검증 절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검 조사 결과다. 이 전 장관이 제출한 자기 검증 질문서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두 기관은 이를 정밀히 확인하지 않고 검증 통과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시원 전 비서관은 법무부 인사검증보고서 일부를 이 전 장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한 공직기강비서관실 검증보고서를 최종 승인해 문제없음 결론을 내린 것으로 특검은 파악했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윤 전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의 임용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의결 절차를 밟아 2024년 3월 4일 이 전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했다. 직후 출국금지 해제 과정에서는 법무부 수뇌부가 직접 움직인 정황이 드러났다.
특검에 따르면 3월 6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은 심우정 전 법무부 차관을 통해 출입국 담당 부서에 이 전 장관에 대한 출국금지 해제를 지시했다. 이후 법무부는 3월 8일 공수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출국금지심의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해제 방침부터 정하고 후속 절차를 밀어붙였다는 것이 특검 설명이다.
출금 해제 직후 이 전 장관의 출국도 매우 빠르게 이뤄졌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이 3월 10일 통상적인 절차인 신임장 수여식을 생략한 채 서둘러 호주로 떠났다고 밝혔다. 특검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이 전 장관의 해외 도피를 목적으로 한 조직적인 범인도피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외교 관행 측면에서도 이례성을 강조했다. 특검팀은 2003년 이후 군 출신 인사를 주호주 대사로 임명한 전례가 없었고, 외교 분야 경력이 없는 인사가 호주 대사에 기용된 사례도 이 전 장관이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주요 동맹국 공관에 대한 인사는 외교·통상 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져 왔는데, 이런 관행을 무시하면서까지 인사가 강행됐다는 취지다.
한편 이 전 장관 출국금지 해제 지시를 전달한 실무 라인 가운데 일부는 기소가 유예됐다. 특검팀은 박 전 장관과 심 전 차관의 지시를 받아 출금 해제를 실제 집행한 이재유 당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 대해 수사 과정에서의 협조를 참작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측과 함께 기소된 전직 참모들의 구체적 반론이나 법적 방어 논리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피고인들이 향후 재판 과정에서 직권 행사와 인사권의 범위, 국가 안보와 외교상 필요성 등을 근거로 혐의를 다투며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에서는 채상병 순직 수사외압 논란에 이어 전직 대통령의 범인도피 혐의 기소까지 더해지면서 정국 경색이 심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공수처 수사와 특검 수사, 사법 판단이 맞물리며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날 특검팀이 핵심 관련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기면서 향후 법원 심리 과정이 이 전 장관 도피 의혹의 전모를 규명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채상병 사건과 이종섭 전 장관 인사 논란을 둘러싸고 정면 충돌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국회는 관련 책임과 제도 개선 방안을 놓고 추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