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계획에 다 반대하는 취지"…윤석열, 한덕수 재판서 국무회의 공방 증언
내란 혐의 재판정에서 계엄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격돌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 전 총리가 계엄 선포에 반대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국무회의 절차와 군 병력 투입 논의를 둘러싼 쟁점이 다시 부각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는 19일 한덕수 전 국무총장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속행 공판을 진행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 당시 상황과 국무위원들과의 논의 경과를 증언했다. 윤 전 대통령이 내란 관련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선 것은 처음이다.

윤 전 대통령은 증인 선서 직후 "증언은 거부하겠다. 제 진술은 탄핵심판정 공판 조서와 중앙지법 공판 조서에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의 진술이 다 담겨 있다"고 말하며 진술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내란 특별검사팀이 주신문을 이어가자 질문에 답하며 구체적인 계엄 논의 과정을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계획에 대한 한덕수 전 총리의 입장을 묻는 특검 질문에 "당시 총리께서는 제 이야기를 듣고 재고를 요청하신 적이 있다"며 "좀 반대하는 취지로 다시 생각해달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께서 보시는 것과 대통령 입장은 판단이 다르다. 난 이게 필요하다"고 답했다며, 서로 설득을 시도하는 대화가 오갔다고 부연했다.
재판부가 "한 전 총리가 반대라고 명확히 말했느냐"고 묻자, 윤 전 대통령은 "반대라는 취지"라고 답했다. 이어 "반대라는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저한테는 반대 취지로 읽혔다"고 설명했다. 다른 국무위원들의 반응과 관련해서는 "각자 부처 입장에서 계엄이 자기들 부처 업무와 관련해 도움이 안 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다 반대하는 취지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경제와 외교 파장을 둘러싼 질의도 오간 것으로 전했다. 윤 전 대통령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시장에 대한 여파는 어떻게 되느냐"고,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이 "우방국이나 동맹국, 가까운 나라들에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오래가지 않고 끝날 계엄이기 때문에 금융시장은 걱정 말라. 미국이나 일본은 안보실 통해 설명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주장했다.
군 병력 투입 논의와 관련해서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 내용을 언급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선포 후 김 전 장관이 전화로 "여론조사 꽃, 민주당사, 언론사에 병력을 보내야 할 것 같다"며 "선거관리위원회와 관련해 확인할 게 있다"고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민간기관이니까 안 된다. 군을 조금 투입하라고 했는데, 뭘 여기저기 보내느냐"고 반대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시 상황을 두고 "내가 펄쩍 뛰었다"고 표현하며 "계엄을 해도 선관위 같은 곳은 계엄법 7, 8조에 따라 계엄군이 갈 수 있지만, 민간기관에는 가면 안 된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가지 말라고 딱 잘랐고, 김 전 장관이 지시해서 결국 가지 않고 출동한 사람은 전원 올스톱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출동에 대해 증인이 허가한 부분은 없고 김 전 장관이 하려고 했다는 거냐"고 재확인하자, 윤 전 대통령은 "당연하다. 저에게 재가를 구한 건데 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회의 구성과 합법성 논란을 두고는 특검과의 신경전도 이어졌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에게 "당시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위원들을 모아야 한다거나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건의했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이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특검이 "당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화해 빨리 오라고 한 건 한 전 총리가 합법적 외관을 갖추자고 건의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냐"고 묻자, 윤 전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이 외관을 갖추려고 온 인형도 아니고, 너무 의사가 반영된 질문 아니냐"고 반박했다.
특검팀은 또 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이 한 전 총리에게 "대통령이 참석해야 하는 행사를 당분간 가줘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지 여부를 추궁했다. 계엄을 일시적 경고 조치로만 인식했다면 이 같은 당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문제 제기다. 윤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계엄 직전 11월에 페루와 브라질에서 APEC과 G20 다자회의에 갔는데, 가서 보니 소위 포퓰리즘적 좌파 정부 정상들을 대거 초대해놨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좀 힘드시더라도 다음부터는 총리님에게 가라고 하고 나는 중요한 외교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해 그런 이야기를 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국무위원 인사와 계엄 요건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당일 국무회의 후 국무위원들의 부서와 관련해 의견충돌이 있었던 걸 아느냐"는 질문에 "나중에 국무위원들의 부서를 받으려고 한 게 아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또 "비상계엄은 긴급 비상대권 행사이기 때문에 절차적 요건은 탄력적으로 운영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계엄 당시 여당 원내대표였던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과의 통화 내용도 쟁점이 됐다. 윤 전 대통령은 "거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 이런 것 때문에 헌정질서, 국정이 마비가 됐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며 "사전 보안 때문에 미리 이야기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걸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지시한 건 없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지시하고 그럴 상황은 아니다"고 답했다.
윤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7일 자필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법정 출석을 거부했으나, 재판부가 이날 오전 "증인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구인영장 집행을 강행하겠다"고 경고하자 입장을 바꿔 법정에 나왔다. 재판부는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를 둘러싼 핵심 증인 신문을 마친 만큼, 향후 공판에서 계엄 선포 정당성과 국무회의 절차의 적법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따져볼 계획이다. 정치권은 윤 전 대통령의 진술을 계엄 책임 소재 규명 과정의 분수령으로 보면서, 향후 공방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