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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산사, 조각의 계절”…고성에서 만나는 가을의 쉼표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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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원 고성에서 가을 산사와 푸른 바다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흔히 고성은 한적한 바닷가로만 기억됐지만, 이제는 깊어가는 계절 속 새로운 쉼의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사소하지만 특별한 한 걸음, 그 안에 달라진 여행의 태도가 녹아 있다.

 

깊은 산속 고요한 절집에서부터,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미술관, 탁 트인 동해 루프탑 베이커리, 오랜 감성의 경양식집까지—고성 곳곳은 각자의 방식으로 가을을 담고 있다. 금강산화암사에서는 단풍을 벗 삼아 마음을 다스리고, 바우지움조각미술관에서는 바람 부는 잔디 위의 작품들이 계절의 선명함을 덧입힌다. 동해와 설악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바다정원에서는 갓 구운 빵과 커피 한 잔이 일상에 작은 여유를 선물한다. 직접 가 본 여행객들은 “생각보다 더 느리고, 그만큼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이라고 고백했다.

금강산화암사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금강산화암사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이런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강원 고성은 가을철 산사·예술·오션뷰 카페를 중심으로 방문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가족·중장년 여행객들의 자연스러운 발길도 이어진다.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의 김명숙 관장은 “예술을 통한 휴식, 일상과 멀어진 사색의 시간이 많은 분들에게 호응받고 있다”고 느꼈다. 지역 식당과 카페도 가을의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SNS엔 “가을빛 머무는 산사에서 힐링했다”, “바다정원 루프탑에서 바라본 파도와 설악은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는 후기가 쏟아진다. 거진읍 장미경양식에선 오래된 돈까스 한 접시에 애틋한 추억을 곁들인다. 한 여행자는 “바삭한 돈까스 옆, 창 너머 동해 바다가 반겨주는 느낌”이라고 감상했다. 잦아지는 도시의 일상 속, 고성은 묵묵한 위로와 새로운 영감을 건넨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여행 방식을 삶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마이크로 리셋’이라고 부른다. 가까운 자연과 예술, 찾기 쉬운 한 끼의 기쁨을 누리는 흐름—그 안엔 거대 관광이 줄 수 없던 작고 따뜻한 만족이 깃든다. 여행의 목적이 ‘멀리 떠남’에서 ‘가볍게 재충전’으로 바뀐 셈이다.

 

이제 고성에서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아도, 깊고 선명하다. 바다와 산, 예술과 시간이 쌓여 만든 가을—그 계절이 머무는 길 위에 작은 쉼표 하나가 새겨진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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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화암사#바우지움조각미술관#바다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