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요금제 계속된다”…헬스장, 표시제 도입에도 소비자 불신 확산
헬스장 가격표시제가 도입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이른바 깜깜이 요금제가 성행하고 있다. 정부가 중요정보 표시 의무를 강화해도 가격을 인터넷이나 매장에 명시하지 않은 채 대면 상담 과정에서만 제시하고, 즉시 결제를 압박하는 영업 관행이 이어지면서 소비자 불만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업계의 저항과 제도 인지도 부족이 맞물리며, 공정거래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이 체육·헬스 분야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한 20대 소비자들은 가격 정보를 얻기 위해 여전히 발품을 팔고 있다. 퍼스널트레이닝과 헬스장 이용권을 알아보던 한 소비자는 온라인에서 가격 문의를 위해 상담 예약을 요구받아 직접 센터를 찾아갔다. 1시간 상담 끝에 제시된 금액은 80만 원이었고, 고민하겠다고 하자 사업자는 즉석에서 10만 원을 깎아주겠다며 결제를 집요하게 종용했다. 결국 소비자는 충분한 비교 없이 결제를 진행했다.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제도 취지와 거리가 있다. 한 대학생은 지금까지 다닌 헬스장 대부분이 가격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온라인에 올라온 정보는 이벤트가 수준에 그치고, 실제 가격을 묻기 위해 전화하면 방문 상담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이용자는 상담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만 가격표를 꺼내 보여주고, 그 자리에서 결제해야만 할인을 적용해주겠다고 강조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집 주변에 여러 헬스장이 있어도 사전에 가격 비교를 하기 어렵다는 불편도 제기된다. 한 소비자는 할인율과 사은품 정보만 게시돼 있을 뿐, 보증보험 가입 여부 등 핵심 정보는 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헬스장 선택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 합리적 비교 대신, 직접 방문과 대면 상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월 발표한 헬스장 가격표시제 준수 실태조사 결과도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소비자단체가 전국 헬스장 2001곳을 점검한 결과 248곳, 비율로는 12.4퍼센트가 가격표시제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전국 헬스장 8곳 가운데 1곳은 여전히 가격을 제대로 표시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헬스장은 2021년부터 가격표시제 적용을 받았고, 이달 12일부터는 보증보험 가입 여부까지 공개해야 하는 대상이 됐다. 보증보험은 선불식으로 장기 이용권을 판매하는 업종에서 소비자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사업자가 폐업하거나 서비스를 지속하기 어려워질 경우, 소비자가 일정 부분 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중요정보 게시 의무와 관련해 상당수 헬스장 사업자가 제도 내용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미이행 업장을 대상으로 직접 확인, 이행 유도, 과태료 부과 등 후속 조치를 검토 중이다.
실제 서울 종로, 노원, 도봉구 일대 헬스장 8곳을 조사한 결과 요금표와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모두 명시적으로 공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의 헬스장은 매장 내 가격표를 비치하지 않거나 벽면에 부착하지 않았고, 이벤트명과 할인가만 구두로 안내하는 방식에 머물렀다. 온라인 채널에서도 정가 대신 행사 가격이나 선착순 특가 등 제한적 정보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업주들은 가격 비공개 이유로 경쟁센터를 의식한 눈치를 들었다. 한 헬스장 운영자는 온라인 가격 공개를 꺼리는 이유가 다른 센터가 자사 가격정책을 그대로 모니터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공개를 통해 개별 상담 시점마다 가격과 혜택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면서, 소비자와의 협상 여지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면 상담을 통해서만 가격에 접근할 수 있는 현재 거래 구조가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일반 음식점도 온라인에 메뉴와 가격을 공개하는 사례가 보편화된 상황을 언급하며, 소비자가 오프라인을 방문하지 않아도 인터넷 검색만으로 가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가격 정보를 미리 제공하지 않은 채 현장에서만 제시하면서, 결제를 주저하는 소비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판매 방식도 문제로 꼽힌다. 이 교수는 계약 체결을 강하게 유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중도 해지와 분쟁이 늘고, 관련 피해 접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처리 비용과 갈등 관리 비용이 커지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평가다.
장기 이용을 전제로 한 결제 구조와 보증보험의 중요성도 부각된다. 김경자 가톨릭대 공간디자인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대부분의 헬스장 이용자가 1개월 단위보다 3개월, 6개월, 1년 등 장기 이용권을 결제하는 관행을 언급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가에 안정적으로 입점해 있는 것처럼 보여 쉽게 폐업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경영상 문제나 임대차 갈등 등으로 갑작스럽게 문을 닫을 위험이 상존한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제도 위반 업소에 대한 행정 규제와 함께 소비자 대상 정보 제공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격표시제와 보증보험 등 중요 정보 표시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고, 소비자가 헬스장을 선택할 때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소비자가 제도와 권리를 인지할수록, 사업자의 자발적 준수 압력도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헬스장 가격표시제는 온라인 플랫폼과 결합될 경우 IT 기반 정보 공개 시스템으로 진화할 여지도 있다. 가령 지역별 헬스장 가격, 보증보험 가입 현황, 환불 규정 등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공공 데이터베이스나 민간 비교 플랫폼과 연계한다면,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거래 투명성 제고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아직은 제도 안착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부의 점검 강화와 소비자 인식 개선이 맞물릴 경우 과도한 대면 상담 중심의 영업 관행이 점차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체육·헬스 분야는 디지털 헬스케어, 운동 데이터 분석 서비스 등 IT 기술과 결합하며 성장 중인 영역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가격과 보증정보조차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관련 서비스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산업계와 규제 당국이 가격표시제를 실효성 있게 정착시키지 못할 경우, 헬스장 이용자의 피해와 사회적 비용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이 깜깜이 요금제를 해소하고 제도 취지를 현실에 안착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