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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비방 정당 현수막도 규제"…민주당 주도 옥외광고물법 개정, 야권 "표현 자유 후퇴" 반발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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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혐오 표현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면 충돌했다. 여당이 혐오·비방성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제1야당 국민의힘과 범여권 내 소수정당까지 거세게 반발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정당 현수막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그동안 적용 예외였던 정당 현수막을 다시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종교와 출신국, 지역 등 개인의 속성을 이유로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의 옥외광고물 게시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야당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강력히 제동을 걸었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2022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정당 현수막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던 입법 취지를 상기시키며 "3년 전에는 정치표현의 자유 내지는 정당 활동의 보장을 얘기하더니, 인제 와서 혐오 표현과 경관 훼손을 얘기한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표현의 장을 넓히겠다며 통과시킨 법을 다시 되돌리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취지다.

 

범여권 소수정당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은 원내외 소수정당의 정치 활동 제약을 우려하며 "(원내 소수정당이나 원외 정당들은)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입장을 홍보할 수단이 없다"며 "너무 감수성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심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재논의를 요구하며 개정안 처리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에 대해 회의를 주재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신정훈 행정안전위원장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도 일정한 한계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신 위원장은 "정치적 표현의 적절한, 절제된 자유 등을 포함해 봤을 때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표결 진행을 선언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에 반발해 집단 퇴장했고, 범여권 의원 15명만이 표결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반대표를 던져 범여권 내에서도 이견이 드러났다.

 

혐오 표현 규제 못지않게 대북전단 문제를 둘러싸고도 여야가 맞부딪쳤다. 행안위는 대북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해 경찰관이 현장에서 직접 제지하거나 해산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도 처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북한 주민을 향한 정보 전달 수단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폐쇄된 사회에서 사는 북한 주민에게 최소한의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전단에도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 차원에서 전단 살포를 전면적으로 제약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대북전단이 남북 긴장만 높이고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실효도 없는 대북 전단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내놓은 법 아니겠느냐"고 반박했다. 남북 접경 지역 주민 안전과 외교적 부담을 줄이려면 법적 제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표결 결과 개정안은 범여권 의원들의 찬성으로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행안위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입법도 함께 처리했다. 위원회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해,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모욕 및 명예훼손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반복돼 온 혐오 발언과 왜곡된 정보 유통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또한 행안위는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 근거를 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도 처리했다.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이어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한 번 더 가동하겠다는 것으로, 향후 위원회 구성과 조사 범위를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돼 온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전체회의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은 대통령 집무실과 주요 요인들의 관저·공관 인근에서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대통령실 인근 집회 전면 제한을 완화해 시민들의 표현권을 넓히는 방향으로 손질한 셈이어서, 향후 경찰의 집회 허가 기준과 현장 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행안위 전체회의에서는 혐오 표현 규제, 남북 관계, 집회·시위의 자유, 과거사 진상 규명 등 한국 정치의 핵심 쟁점들이 한꺼번에 테이블에 올라와 여야가 거센 공방을 벌였다. 각 개정안은 향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와 본회의 표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어, 정치권은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치열한 여론전과 협상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쟁점 법안들에 대한 본격 논의와 최종 처리에 나설 계획이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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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옥외광고물법#행정안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