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4차 연속성공"…정부, 자주우주수송 역량 입증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4차 발사까지 연속 성공을 기록하며 국내 독자 우주 수송 능력이 한 단계 도약했다. 정부는 이번 발사를 통해 군사·통신·지구관측 위성을 자체 발사체로 쏘아 올릴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발사체 개발 주체였던 정부 연구기관 중심 구조에 민간 기업이 본격 합류하면서, 향후 한국 우주 산업의 패러다임이 ‘정부 주도 개발’에서 ‘민간 상업 발사 서비스’로 넘어가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7일,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4차 발사가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누리호는 이날 새벽 1시 13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돼 예정된 비행 시퀀스를 모두 정상 수행했다. 초기 텔레메트리 분석 결과,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12기의 큐브위성이 목표 궤도인 고도 약 600킬로미터 태양동기궤도에 정확히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누리호가 최종 고도 601.3킬로미터, 궤도 속도 초속 7.56킬로미터, 궤도 경사각 97.75도로 비행해 목표한 태양동기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설명했다. 태양동기궤도는 일정한 태양각을 유지하며 지구를 도는 특수한 궤도 형태로, 위성이 항상 비슷한 조도 조건에서 지표를 관측할 수 있어 정밀 지구관측과 기상·환경 모니터링, 국토 관리에 널리 활용된다.
기술적 관점에서 누리호 4차 비행은 1·2·3단 엔진 연소, 페어링(탑재부 덮개) 분리, 위성 분리 등 발사체 주요 공정이 예정된 시퀀스대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액체연료 기반 다단 로켓은 각 단의 연소시간, 추력, 분리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나도 궤도 투입에 실패할 수 있다. 우주항공청과 항우연은 2차와 3차에 이어 4차에서도 연속으로 목표 궤도에 위성을 투입하면서, 한국형발사체 설계와 조립, 품질관리 체계가 신뢰성 검증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주 탑재체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는 새벽 1시 55분경 남극 세종기지 지상국과 첫 교신을 완료했다. 태양전지판 전개와 기초 상태 점검 결과 위성 상태는 정상으로 파악됐다. 차세대중형위성 시리즈는 고해상도 지구관측을 목표로 하는 정밀관측 위성으로, 향후 국토·재난·환경 모니터링과 더불어 농업·도시계획·인공지능 기반 위성데이터 분석 서비스 등 다양한 공공·민간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함께 실린 12기의 큐브위성은 각기 다른 임무와 개발 주체를 가진 초소형 위성들로, 대학교와 연구기관, 스타트업 등이 주축이 돼 개발했다. 이들 위성은 설계에 맞춰 순차적으로 지상국과 교신을 시도하며 상태를 확인하고, 통신·관측·우주환경 검증 등 각자의 실험 임무를 수행한다. 소형 위성 다량 발사는 발사 서비스 상업화와 우주 데이터 비즈니스 확대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특히 이번 발사는 체계종합기업으로 참여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 제작·조립을 총괄하고 발사 운용에도 함께 참여한 첫 민관 공동 발사라는 점에서 산업적 의미가 크다. 그동안 누리호는 항우연이 전 주기를 책임지는 연구개발 중심 사업 구조였으나, 4차 발사에서는 민간이 제작과 조립, 운용에 실질적으로 참여해 향후 상업 발사 서비스 모델을 시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한국형발사체 기술이 단순 시험 비행 단계에서 벗어나, 민간이 제품화와 서비스화를 준비할 수 있는 산업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스페이스X, 유럽 아리안스페이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이미 상업 발사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로켓과 다중 위성 동시 발사로 발사 단가를 크게 낮추며 위성 통신과 지구관측, 우주인터넷 사업까지 확장했다. 한국의 누리호는 아직 재사용 단계에 진입하지 않았지만, 반복 발사를 통해 안정성과 신뢰성을 입증하는 과정에 있다. 국내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형발사체가 결합된 모델이 향후 동아시아 지역 발사 서비스 수요와 군·관측 위성 발사 등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책 측면에서 이번 성공은 정부가 추진 중인 차세대발사체 개발과 달·심우주 탐사 계획의 추진력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누리호를 두 차례 더 발사해 비행 데이터와 운용 경험을 축적하는 한편, 누리호보다 성능이 향상된 차세대발사체를 개발해 더 무거운 위성 탑재와 다양한 궤도 진입을 가능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차세대발사체는 향후 달 궤도선과 심우주 탐사선, 군 정찰위성 등 국가 전략 자산 발사에 투입될 잠재적 플랫폼으로 거론된다.
배경훈 부총리는 이번 발사를 “정부와 민간, 국가 연구소가 하나의 팀으로 수행한 최초의 민관 공동 발사”로 규정하며, 한국 우주 산업 생태계가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 역시 2027년까지의 추가 발사와 차세대발사체 개발을 병행해 우주 개발 역량을 한층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누리호의 연속 성공이 곧바로 상업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기술 신뢰성과 인력 풀, 산업 생태계 조성 측면에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위성 설계와 제작, 발사 서비스, 궤도 운용, 위성 데이터 분석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가치사슬을 국내에서 구축할 수 있을지가 향후 관건으로 꼽힌다. 산업계는 이번 누리호 4차 발사가 기술 성공을 넘어 실제 시장과 수요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