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박규채 2주기…전원일기부터 정치 파란까지”→굳건했던 존재감에 남은 긴 여운
엔터

“박규채 2주기…전원일기부터 정치 파란까지”→굳건했던 존재감에 남은 긴 여운

김서준 기자
입력

박규채의 깊은 미소가 그리워지는 여름, 연기와 현실을 자유로이 오갔던 원로 배우의 파란만장한 삶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는다. 드라마 '제1공화국'과 '전원일기' 등 시대를 기록한 다수 작품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남긴 박규채가 오늘 2주기를 맞았다. 그는 누구보다 뜨거웠던 현장에서 그리고 무대 밖 인생에서 늘 연기자이자 인생의 선배로,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1962년 KBS 탤런트로 첫발을 내딛은 박규채는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제5공화국' 등 역사적 명작 드라마와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따뜻했던 '전원일기' 면장 역까지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며 대중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제3·4대 전반기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기붕 역은 정치와 예술을 잇는 박규채의 상징적 대표작 중 하나로 남았다.

박규채 2주기…전원일기부터 정치 파란까지
박규채 2주기…전원일기부터 정치 파란까지

건강의 위협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무대에 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전립선암 2기에도 불구하고 완치 소식을 전했고, 마지막까지 드라마와 영화에서 중후한 아버지 역할로 시청자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박규채의 삶에는 예술과 정치, 교육이 뒤섞여 있었다.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야당 후보 김영삼을 지지하며 공식 연설에 참여했고, 정치적 이유로 방송에서 퇴출당해 셋방살이를 해야 했던 사연은 그의 인생에 파란을 남겼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후반 영화진흥공사 사장에 임명되며 다시 한 번 공적인 역할을 맡았다.

 

말년에는 오페라 해설과 대학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배재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한남대학교 등에서 연기와 문화예술을 가르쳤던 박규채의 인생은 한없이 넓으면서도 굳건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한 세대의 예술혼과 인간적 고뇌를 품은 채 시대의 기록자가 됐다.

 

박규채의 건강 상태와 소소한 근황은 '여유만만', '백일섭의 그때 그 사람' 등 다양한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무엇보다 드라마와 현실을 넘나들며 언제나 대중 곁에 머물던 그의 따뜻한 시선이 여전히 많은 이에게 기억되고 있다. 시간은 흘렀지만 박규채가 남긴 굳건한 존재감과 여운은 이후에도 한국 방송계에 오랫동안 남을 전망이다.

김서준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박규채#전원일기#제1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