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의료격차 넘는 K의술”…서울아산, 아프리카 청년 다리 살렸다
교통사고 후 부실한 수술로 다리 변형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청년이 한국의 중증 정형외과 재건 기술로 다시 걷게 됐다. 고난도 골재건 수술과 피부 이식, 체계적인 재활을 한 번에 제공하는 한국형 중증 외상 치료 역량이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 환자에게 적용된 사례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국내 상급종합병원의 외상 재건 수술 기술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첨단 의료 기술을 활용한 국제 공공의료 모델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시에라리온 출신 청년 존 콘테 씨를 초청해 대퇴골 불유합과 변형, 내고정물 돌출 상태를 교정하는 재건 수술과 재활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27일 밝혔다. 콘테 씨는 2022년 12월 교통사고로 왼쪽 대퇴골에 개방성 골절을 입은 뒤 현지 병원에서 대퇴부부터 무릎까지 금속 고정물 삽입 수술을 받았으나, 나사 파손으로 고정물이 이동하면서 무릎을 찌르는 통증과 보행 장애가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정확한 영상의학 검사 결과 대퇴골이 제대로 붙지 않은 불유합 상태인 데다, 뼈 축이 휘어져 하지 길이가 짧아지고 걸음걸이가 비정상적으로 변한 것이 확인됐다. 고정용 철심이 슬개골 주변으로 돌출돼 보행 시마다 무릎을 반복적으로 자극했고, 현지 의료진은 지속적인 자극이 이어질 경우 무릎 굴곡이 불가능해지고 최악에는 절단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남은 기간 정상에 가까운 보행이 가능할 시간도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소견을 내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시에라리온 내에 이런 고난도 재건 수술을 수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었다. 수도 프리타운조차 정형외과 전문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개방성 골절 이후 정밀 영상 진단과 정교한 내고정 수술, 단계적 재활까지 이어지는 선진 치료 체계가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콘테 씨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처지였지만, 교회 전도사로 받는 소액 사례비와 후원금에 의존해 자력으로 해외 치료를 선택할 환경도 아니었다.
콘테 씨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국인 선교사가 해외 정형외과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다가 서울아산병원에 해외 불우환자 초청 진료를 요청했고, 병원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공동 검토 끝에 치료 지원을 결정했다. 수술과 입원, 재활 등 전체 치료 과정의 비용은 재단과 병원이 전액 부담했다. 이에 따라 콘테 씨는 10월 4일 한국에 도착했으며, 시에라리온 출신 환자에게 필수적인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여부 확인을 위해 3주간 격리 관찰과 검사를 거친 뒤 10월 27일 정식 입원했다.
정밀 검사를 통해 내려진 최종 진단명은 대퇴골 불유합 및 변형, 내고정물 돌출이었다. 주치의인 김지완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먼저 기존 철심과 나사를 제거하고, 변형된 대퇴골 축을 교정해 해부학적 정렬을 회복한 뒤 새로운 고정물로 재고정하는 전략을 세웠다. 아직 붙지 않은 대퇴골 부위는 자가 혹은 동종 골 이식을 병행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직경의 금속 내고정 장치를 추가로 삽입해 골유합을 유도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교통사고 당시 손상됐던 왼쪽 발목 주변 연부조직 결손도 수술 성공의 변수였다. 만성 상처 부위에는 내성균이 검출돼 감염 관리와 조직 정리가 병행되지 않을 경우, 뼈 재건 후에도 감염 악화로 전체 치료 성과가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성형외과 권진근 교수팀을 참여시키는 다학제 협진 체계를 가동했다. 권 교수는 내성균에 맞춘 표적 항생제 치료를 진행하면서, 침상에서 여러 차례 괴사조직 제거를 반복해 상처 부위를 피부 이식이 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지난 3일 정형외과와 성형외과가 동시에 집도하는 7시간 장기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팀은 변형된 대퇴골을 절골해 축을 곧게 세우고, 새로운 금속 내고정 장치로 골절 부위를 단단히 고정했다. 뒤이어 준비된 연부조직 결손 부위에 피부를 이식해 상처를 봉합했다. 고난도 정형외과 수술과 미세 성형외과적 기술력이 결합해 긴 수술 내내 출혈과 감염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수술 후 콘테 씨는 안정적인 회복 과정을 밟았다. 이식한 피부는 합병증 없이 생착됐고, 대퇴골 고정 부위도 영상 검사에서 양호한 정렬 상태를 보였다. 병원은 현지 재활 인프라를 고려해 한국 체류 기간 동안 집중 재활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수술 직후에는 관절 가동 범위 유지와 근력 보존을 위한 기본 운동을 시작했고, 통증 조절이 이뤄지자 보행 보조기구를 활용한 부분 체중 부하 훈련, 평지 보행 훈련 순으로 단계적으로 확장했다. 그 결과 콘테 씨는 2주간의 재활 과정을 거쳐 일상 보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했고, 의료진의 최종 평가 후 퇴원했다.
김지완 교수는 장기간 통증과 장애를 겪어온 젊은 환자가 다시 걷게 되는 과정이 가진 의료적, 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현지 의료 환경을 감안해 한국 체류 동안 최대한 많은 재활치료를 진행했고, 환자가 적극적으로 협조한 덕분에 보행 기능 회복 속도가 빨랐다고 평가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런 사례가 고난도 외상 재건 수술, 감염 관리, 재활까지 통합 제공하는 한국 상급종합병원의 역량을 입증하는 동시에, 진단 영상 장비와 정밀 수술 기구, 다학제 협진 시스템 등 바이오·의료 기술 인프라 우위를 보여주는 지표로 본다.
중증 외상과 골재건 분야는 로봇 수술, 3차원 CT 기반 수술 계획, 맞춤형 금속 임플란트 제작 등 첨단 디지털 헬스 기술과의 결합이 빠르게 진행되는 영역이다. 서울아산병원과 같은 대형 병원은 이런 기술을 활용해 복잡한 변형 교정 시 정확도를 높이고 수술 후 합병증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치료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 반면 시에라리온처럼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국가에서는 기본적인 내고정 수술과 감염 관리조차 어렵고, 수술 후 재활 체계도 미비해 외상 환자가 장기 장애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통해 국내 의료기관의 기술력이 단일 환자 치료를 넘어 국제 보건 협력과 의료 인력 교육, 원격 컨설팅 같은 형태로 확장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실제 글로벌 차원의 의료 접근성 격차를 줄이려면 개별 병원의 선의와 기부 지원을 넘어, 공공·민간 협력 구조와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퇴원에 앞서 콘테 씨는 서울아산병원 의료진과 지원 기관에 거듭 감사 인사를 전하며, 건강을 되찾은 다리로 고국에 돌아가 더 적극적으로 사회를 돕는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사례처럼 고난도 의료 기술과 공익적 지원이 결합한 모델이 얼마나 확산될 수 있을지, 그리고 첨단 의료 기술이 국경을 넘어 실제 환자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