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능선 위의 시간 산책”…고령 대가야 유적 따라 걷는 가을
가을빛이 깊어지는 요즘, 고령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거 왕국의 유적을 따라 한적하게 걷는 일은 이제 특별한 여행이 아닌 일상의 작은 사치가 됐다. 흙내음과 함께 스며드는 고령의 시간은 세월의 이야기와 자연의 고요 속에서 새로운 위로로 다가온다.
이곳의 중심은 대가야박물관이다. 두 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에서는 대가야왕릉에서 출토된 유물과 국내 최초 대규모 순장 무덤이 복원돼 있어, 고대 왕국의 모습을 생생히 만날 수 있다. 특히 지름 37m, 높이 16m에 달하는 돔 건물은 방문객들에게 인상적인 첫인상을 남긴다. 상설전시실에선 구석기부터 근대까지의 고령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과 야외전시장, 고분군까지 다양한 코스를 따라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인근에는 고령향교, 주산성 등 소소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어 ‘역사 산책’에 운치를 더한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와 지자체 보도에 따르면, 대가야 고분군 방문객은 해마다 증가세다. 여행 트렌드 변화 속에,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소도시의 매력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 ‘고령대가야시장’도 있다. 이곳은 지역 특산물과 제철 농산물, 따뜻한 인심이 넘치는 장터 풍경이 살아 숨 쉰다. 과일이나 작물, 직접 만든 먹거리 사이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장꾼들과 정을 주고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은 그런 소박한 정서가 더 그리워진다”고 시장을 찾은 한 가족은 이야기했다. 시장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과 여행객 모두가 어울리는 삶의 ‘쉼표’가 된다.
지산동고분군에선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이들이 많다. 고요한 언덕길을 따라 늘어선 고분들은 그 자체로 대가야의 숨결을 품은 시간의 지문이 된다. 관리가 잘된 잔디와 탁 트인 전망, 아이들과 걷기에도 편안한 동선이라 가족 단위 여행자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그만큼 고령의 가을 풍경은 근사한 사진 한 장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게 된다.
걷다 지칠 땐, 동네 베이커리 진미당제과에 들르기도 한다. 매장은 깔끔하게 관리되고, 빵은 늘 신선하다. 소담하고 친절한 응대 덕분에, “고령에 간다면 꼭 들르는 집”이라는 입소문도 자연스럽게 번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소도시 여행을 ‘일상 리셋’의 한 방법이라 부른다. 단순한 관광을 넘어, 역사와 사람, 풍경이 엮인 공간 속에서 잊고 있던 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발견한다는 의미다.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경험을 찾는 이에게 고령은 멀리 돌아온 마음의 집 같다”는 여행 칼럼니스트의 말도 공감을 얻는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고령 가면 꼭 고분 산책로는 걸어봐야 한다”, “시장에서 먹는 군고구마가 최고”라는 지역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최근엔 SNS에서 대가야 유적 인증사진이 유행이며, ‘노을지는 고령 전경’을 담은 사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가을빛을 품은 고령의 산책은 그저 한 번의 여행이 아닌,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나를 이어주는 시간의 문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