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발효 간장과 화학 간장 논란”…식품업계, 유형 통합 논의 본격화
간장 분류체계 단순화가 식품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소비자 혼란 해소를 명분으로 추진되면서, 국내 장류 분야에서 전통과 산업화의 가치 충돌이 첨예해지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생산 및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복잡한 현행 분류 방식을 개선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와 전통 장류 업계, 정부 일부 부처는 이번 논의를 한국 발효식품 정체성 훼손으로 보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논란이 ‘식품 규제 혁신 vs. 고유문화 보존’ 대립 구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지난달 서울에서 한국식품산업협회 기자간담회가 열린 이후, 간장 식품 유형 통합 논의가 업계 화두로 부상했다. 박진선 협회장(샘표식품 대표)은 “간장 유형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단순화 체계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식약처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식품공전상 간장은 한식간장, 양조간장, 산분해간장, 효소분해간장, 혼합간장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 특히 산분해간장은 전통적 발효가 아닌 화학적 단백질 분해 방식(산분해법)으로, 짧은 생산 시간과 공정 단순화가 장점인 대신, 발효에 의존하는 기존 장류와는 원천적으로 다르다.

이런 구분은 소비자 입장에서 간장 선택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한식 식문화와 직결된 정체성 보전의 핵심 측면으로 기능해왔다. 최근 일부 기업들 사이에서는 “제조법보다 성분 중심, 소비자 중심 명칭이 합리적이고, 복잡한 유형 구분은 오히려 수출과 공정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에 식약처는 2023년부터 유형 단순화 타당성 연구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통 장류 업계와 시민단체, 정치권은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식품공전의 통합은 전통 발효식품과 화학적 제조품의 본질적 차이를 희석함으로써, 소비자 알권리 침해와 한국 장류문화의 퇴색을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권대영 전 한국식품연구원장은 “발효 없는 화학 장류와 발효 장류를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전통 정체성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농식품부 역시 최근 5년간 한식간장의 성장세와 전통식품 육성 정책의 연계성을 강조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 중이다. 정치권에서도 “장류 일원화는 편의주의”라는 비판이 나왔다.
과거 일본에서는 간장 산업 현대화 과정에서 유사한 논란을 겪었으나, 최종적으로 전통식품 인증제와 소비자 표시제 강화 등으로 절충점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전통과 산업 혁신 사이에서의 균형점을 찾는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식품산업협회 측은 내부적으로 회원사간 이견이 존재함을 인정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추가 수렴하는 등 신중 기조로 전환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향후 식품공전 개정 방향이 한국 장류산업의 산업화 속도와 전통 발효시장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다”며, “규제 명확성과 문화 정체성 보전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업계는 앞으로 간장 통합 논의가 실제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