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준, 귤레귤레 페이소스 끝내 폭발”…고요한 연기→관객 심장 깊이 적셨다
저녁 공기가 스며드는 극장 한켠, 이희준의 사연 담긴 눈빛이 스크린을 부드럽게 가른다. 담금질하듯 눌러놓은 감정은 조용히 번져 관객의 숨결 안에 깃든다. 말 대신 전해지는 침묵과 억눌린 표정, 어느 순간 비치는 과거의 상처들이 관객의 마음을 차갑게 흔들었다.
이희준이 연기한 이대식은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낯선 튀르키예 출장길에 오르는 인물이다. 상사 고원창(정춘)과의 관계,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이정화(서예화)와의 재회는 그 내면의 굳은 벽을 조심스레 두드린다. 겉으론 무심하지만, 빠른 눈치와 굳은 자세, 곧장 내뱉지 못하는 말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희준은 서두르지 않는 절제와 예리한 집중력으로 이대식의 심리를 쌓아 올렸고,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감정의 진폭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특히 “네가 내 진심을 때렸고, 난 아직 그 멍 그대로야”라는 고백은 함축된 슬픔과 분노, 연민을 소리 없는 울림으로 전한다. 깊은 상처 위에 흐르는 고요한 페이소스, 그리고 무너질 것 같으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내면의 흔들림은 이희준만의 힘으로 관객 사이를 진하게 적셨다. 저녁 식사 장면에서 읊조려지는 대사, 차분히 머문 침묵마저도 영화의 정서와 분위기를 단단하게 잡아냈다.
‘귤레귤레’는 감독 고봉수와 각본가 이주예가 완성한 서정적 드라마로, 이희준의 뛰어난 절제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말보다 미세한 시선·몸짓·호흡 등으로 감정의 폭을 채운 연기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었고, 이대식 내면의 분열과 고뇌, 현실적 모순이 차분하게 스며든다. 현실과 서사의 경계에 선 인물의 고통과 온기가 귤레귤레의 잔상으로 오래 남는다.
이희준의 이번 연기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도 조용한 표정 하나, 움직임 한줄로 관객의 마음에 깊고 뭉근한 파문을 새겼다. 고봉수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완벽한 호흡을 선보인 ‘귤레귤레’는 이희준의 새로운 대표작으로 남을 듯하다.
영화 ‘귤레귤레’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이며, 현실적 서사와 진한 감정선을 교차시킨 이희준의 내면 연기가 관객의 가슴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