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과 패기 맞서다”…원성진·송지훈, 란커배 32강→신진서와 한팀
부드러운 등장과는 달리, 마침내 승부의 순간이 닥치자 바둑판 위에는 관록과 패기가 나란히 빛났다. 제3회 취저우 란커배 세계바둑오픈 48강전에서 원성진 9단과 송지훈 9단이 확실한 존재감을 각인하며 나란히 32강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승리는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한 침착함과 신예의 흔들림 없는 집중력, 두 가지 힘이 한국 바둑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증명한 장면이었다.
원성진 9단은 중국의 한모양 5단을 상대로 266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초반 강한 압박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진형을 구축했고, 중반 이후 결정적인 승부수로 상대를 압도했다. 엎치락뒤치락했던 바둑판의 흐름마저 베테랑의 차분함으로 돌려세운 한 판이었다. 반면, 세계대회 데뷔에 나선 송지훈 9단은 중국 강자 자오천위 9단을 178수 만에 불계로 제압하며 첫 무대에서 값진 결실을 거머쥐었다. 강한 긴장 속에서도 끝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담대한 한 수가 데뷔전의 긴장감을 관통했다.

같은 날 출전한 나현·박상진 9단과 시니어조 유창혁 9단은 아쉽게 중국 기사들에게 밀려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에 따라, 원성진·송지훈 9단을 비롯해 시드를 받은 신진서, 강동윤, 신민준, 변상일, 안성준까지 총 7명이 32강전에 진출했다.
32강 대진 추첨 결과 신진서는 중국의 천하오 6단과, 강동윤은 딩하오 9단과 만난다. 변상일의 상대는 구쯔하오 9단, 신민준은 당이페이 9단과 맞붙는다. 안성준은 1라운드에서 유창혁 9단을 꺾고 올라온 미위팅 9단과 대결하며, 원성진과 송지훈은 각각 투샤오위 9단, 왕스이 8단을 상대로 16강 진출을 다툰다.
경기 종료 후 원성진은 “국제무대의 긴장감이 늘 특별하다. 남은 라운드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데뷔전에서 승전고를 울린 송지훈 역시 “기회를 얻어 기쁘다.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기사 모두 관록과 패기, 서로 다른 결로 팀에 무게감을 더했고, 대표팀의 분위기는 한층 더 끈끈해졌다.
란커배는 우승상금 180만위안, 약 3억4천200만원이 걸린 세계대회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초읽기 1분 5회로 치러지고 있다. 2일 펼쳐지는 32강에는 중국이 22명, 일본이 2명, 대만이 1명으로 한중간 대결 구도가 짙어졌다. 한국 바둑 대표팀이 다시 한번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응원의 시선은, 이른 여름밤 바둑판에 드리운 긴장만큼 묵직했다. 오래 곱씹을 승부와, 벅찬 시작의 의미를 안긴 란커배 32강의 무대는 7월 2일 오후, 중국 저장성 취저우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