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아빠 흡연, 자녀 노화 앞당긴다”…후성유전 연구 주목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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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흡연을 시작한 남성의 자녀가 실제 나이보다 생물학적으로 더 빠르게 노화된다는 최신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 베르겐대 로페즈-세르반테스 박사 연구팀이 최근 유럽호흡기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내용이다. IT와 바이오 융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행동 습관이 차세대 유전체 변이와 질병 위험에까지 미치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 분야의 파급력이 크다는 점이 재확인된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팀은 7세에서 50세 사이 참가자 892명의 혈액 샘플과 부모 건강습관 정보를 다면적 분석했다. 참가자의 식습관, 체중, 콜레스테롤 등 데이터와 함께 DNA에서 발견되는 후성유전적 변화(메틸화 패턴 등)를 토대로 생물학적 나이를 산출했다. 그 결과 “아버지가 청소년기에 흡연을 시작했고, 자녀도 흡연한 경우” 자녀의 생물학적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평균 14~15개월 앞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암, 치매, 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의 조기 발병 위험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이번 연구의 핵심은, 아버지의 흡연 시기가 자녀 세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라는 점이다. 성인기에 흡연을 시작한 경우나 어머니 흡연과는 유의미한 연관성이 통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세포·분자 수준에서 정자 세포의 유전 정보에 청소년기 손상 이력이 ‘지문’처럼 남아, 차세대에 후성유전적 형태로 전달되는 원리를 방증한다.  

 

이 같은 ‘행동 양식의 유전’ 현상은 최근 후성유전학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의 발전으로 더욱 객관적·정량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유전자·후성유전체 데이터가 치매, 암, 대사질환 예측 및 맞춤형 치료 설계에 활용된다. 글로벌 정밀의료 산업이 “유전 정보+환경”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통찰력을 중시하고 있는 배경이다.  

 

정책·규제 측면에서도 논의가 진전 중이다. 연구팀은 “청소년기(사춘기 전후) 흡연이 정자 유전체에 직접적 흔적을 남길 수 있어, 사춘기 이전의 흡연 예방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개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청소년 대상 담배 규제 강화, 사회환경 개선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후성유전 연구가 질병 예방과 공중보건 정책 패러다임 변화를 촉발할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기술 발전만큼 윤리와 실효성 중심의 정책 정비가 IT·바이오 분야 성장을 좌우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계는 가족력과 환경이 결합된 맞춤 의료 시대가 본격화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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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즈세르반테스#청소년흡연#후성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