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AI가 폐암 조기진단 앞당긴다…코어라인소프트, 국가검진 판도 바꿀까
폐암 조기진단을 둘러싼 의료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인 암 가운데 폐암은 특히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진단 시점이 환자 생존율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전이 전 단계에서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두 배 가까이 높아지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상당수가 4기 이후에야 진단된다. 복잡한 영상 판독과 고위험군 선별의 어려움이 맞물리면서 국가 단위 폐암검진 제도화도 더디게 진행돼 왔다. 최근에는 이 병목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료 인공지능이 주목을 받는 흐름이다. 의료AI가 저선량 흉부 CT 데이터를 일관되게 판독해 판독 인력 부족을 보완하고, 고위험군을 보다 정밀하게 선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폐암은 영상 판독 난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폐 결절을 찾아내는 수준을 넘어 심혈관 석회화, 폐기종, 기관지 확장증, 만성폐쇄성 폐질환 등 여러 동반 질환 정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이런 동반 질환들은 모두 환자의 예후와 치료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CT 한 장을 읽더라도 방대한 데이터를 구조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일관된 기준을 유지하기 어렵고, 판독자 간 편차도 크다는 점이 그동안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폐암의 전체 5년 상대 생존율은 41퍼센트 수준에 머무른다. 반면 전이가 없는 조기 폐암인 경우 5년 생존율은 80퍼센트까지 높아진다. 같은 질환이라도 발견 시점에 따라 생존 가능성이 극명하게 갈리는 구조다. 그럼에도 복합적인 영상 정보를 빠짐없이 분석해야 하는 특성 탓에, 폐암 검진은 위양성 관리와 고위험군 정의, 판독 인력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과제로 남아 있었다. 특히 고위험군 기준을 지나치게 좁게 설정하면 조기 발견 기회를 놓치고, 반대로 지나치게 넓히면 불필요한 검사와 비용, 환자의 불안이 급증한다는 점에서 정책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AI는 대량의 CT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절과 동반 질환을 자동 탐지하고, 위험도를 수치화하는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AI는 학습 단계에서 수만 건 이상의 과거 영상과 임상 데이터를 연계 분석해, 특정 패턴이 향후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예측하도록 설계된다. 판독 정확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속도까지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동일한 영상에서 폐 결절뿐 아니라 심혈관 석회화와 폐기종 정도를 동시에 정량화할 수 있어, 향후 심혈관계 및 호흡기 질환 위험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의 단일 질환 중심 판독 방식의 한계를 줄이고, 다질환 동시 관리라는 예방의료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에서는 국가 단위의 폐암검진 제도화 과정에 AI가 본격적으로 결합되는 추세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저선량 흉부 CT 기반의 폐암검진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영상 판독 효율과 품질관리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AI를 활용하는 방향을 검토해 왔다. 유럽연합은 2022년에 폐암검진을 공식 암검진 권고 항목에 포함했고, 이후 독일과 프랑스 등 회원국을 중심으로 시범사업과 제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호주는 올해 7월부터 정부 주도의 국가 폐암 선별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체계적인 대상자 선별과 장기 추적 관리를 위한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폐암뿐 아니라 유방암, 전립선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AI 기반 판독 솔루션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국가 단위 검진 체계를 설계하려면 단순히 AI 모델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수십 개 병원에서 생성되는 영상과 판독 데이터를 일관된 형식으로 통합 관리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환자별 영상 품질관리, 개인정보 보호, 의료정보 표준화와 상호운용성 확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의료기관마다 사용하는 장비와 정보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AI 솔루션은 다양한 환경에서도 동일한 성능을 내도록 설계돼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AI 정확도뿐 아니라 운영 안정성과 의료 거버넌스를 뒷받침하는 신뢰가 핵심 요소로 부각된다.
이 지점에서 국내 의료AI 기업 코어라인소프트가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유럽의 대형 폐암검진 프로젝트인 4ITLR, 이탈리아의 RISP, 독일의 HANSE 프로그램 등에서 AI 기반 흉부 진단 솔루션을 공급하며 실제 운영 성적을 쌓아 왔다. 이들 프로젝트에서는 저선량 흉부 CT를 활용한 폐암 선별 검사에서 AI가 결절 탐지 정확도를 높이는 동시에 판독 시간을 단축해, 대규모 대상자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독일 HANSE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이후 독일에서는 폐암 스크리닝 1차 진단 과정에서 AI 활용을 필수적으로 권고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이 정리됐다. 이는 국내 기업이 참여한 AI 솔루션이 국가 수준의 검진 체계에서 핵심 도구로 인정받은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최근 프랑스 국립암연구소가 후원하는 국가 폐암검진 시범사업 IMPULSION에서 AI 흉부 진단 솔루션 단독 공급사로 선정되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프랑스 프로젝트는 전국 단위 의료기관을 아우르는 폐암검진 체계 구축을 목표로, 저선량 CT 기반의 위험도 평가와 추적 관찰 프로토콜을 표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AI 솔루션은 검진 대상자의 흡연력 등 임상 정보와 영상 데이터를 결합해 개별 환자의 추적 검사 간격을 설정하고, 각 검사에서 발견된 이상 소견을 정량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다양한 유럽 국가에서 실제 검진 운영 경험을 확보하게 된 셈이며, 향후 한국형 폐암검진 모델에도 참고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AI가 검진 과정에 깊이 들어오면서 의료 현장의 역할 역시 변하고 있다. 의료AI는 의료진의 판단을 대체하기보다, 방대한 영상 데이터를 빠짐없이 걸러내는 필터와 의사결정 지원 도구로 활용되는 방향이다. 일선 영상의학과와 호흡기내과에서는 AI가 표시한 의심 영역을 토대로 최종 판독과 치료 계획을 결정하고, 판독 기준을 병원 간에 보다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암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환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방향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옮겨가고 있다며, 맞춤화된 치료와 예방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의료AI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와 인프라 정비에 나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데이터 중심병원 사업 등을 통해 대형병원의 데이터 표준화와 안전한 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의료AI 개발 기업과 병원의 협력 모델을 확장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영훈 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 9월 의료데이터 중심병원 최고정보책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가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의료 AI 발전을 위해 전방위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데이터 품질과 규제 정비, 보험 적용 여부 등 과제가 남아 있지만, 국가검진과 의료AI의 결합은 장기적으로 필연적인 방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폐암처럼 생존율이 진단 시점에 크게 좌우되는 질환에서 의료AI 도입 효과가 가장 먼저 가시화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국가 단위 검진에 AI를 본격 적용하려면 알고리즘 성능 검증, 책임 소재, 개인정보 보호 등 제도적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계는 AI 기반 폐암검진 기술이 실제 의료 현장과 제도권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할지 주시하고 있으며, 기술과 윤리, 산업과 규제의 균형이 새로운 성장 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