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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인 묶는 디지털헬스케어”…카카오헬스, 차바이오와 글로벌 공략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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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모바일을 축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글로벌 의료네트워크와 결합하며 산업 지형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카카오헬스케어가 차바이오그룹으로부터 대규모 전략 투자를 유치하며 온·오프라인 통합 의료 서비스, 해외 거점 확장에 속도를 내는 구도다. 업계에서는 플랫폼 기반 디지털 헬스 기업과 글로벌 병원 체인이 맞손을 잡은 이번 협력 구도가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카카오헬스케어는 19일 차바이오그룹과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총 10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한다고 밝혔다. 양측은 단순 재무 투자 차원을 넘어 지분 교환을 포함한 전략적 협력 구조를 설계했다. 카카오는 글로벌 헬스케어 사업 역량을 갖춘 차바이오텍 지분을 인수하고, 차바이오그룹은 카카오헬스케어 지분을 확보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고도화를 노리는 방식이다.

투자 구조를 구체적으로 보면 양사는 지분 교환과 함께 카카오헬스케어에 500억원을 직접 투자한다. 차바이오그룹 계열사인 차케어스와 차AI헬스케어는 카카오로부터 약 700억원 규모의 카카오헬스케어 지분을 확보한다. 카카오는 확보한 자금 중 300억원을 차바이오텍 지분 인수에, 400억원을 카카오헬스케어 지분 재투자에 투입한다. 여기에 차AI헬스케어가 카카오헬스케어에 100억원을 별도로 투자한다.

 

외부 재무 투자자들로부터의 추가 자금도 더해진다. 카카오헬스케어는 내년 1분기까지 두 차례에 걸친 거래를 통해 500억원 규모의 외부 투자를 추가로 유치할 계획이다. 거래가 모두 마무리되면 카카오헬스케어 지분 구조는 차케어스와 차AI헬스케어가 43.08, 카카오가 29.99, 외부 투자자가 26.93를 보유하는 형태로 재편된다. 사실상 차바이오그룹이 최대주주로 올라서고, 카카오와 외부 투자자가 전략적·재무적 파트너로 참여하는 3자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이번에 확보한 1000억원을 핵심 서비스의 기술 고도화와 사업 확장에 투입한다. 우선 AI 기반 모바일 건강관리 솔루션 파스타를 고도화해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추천과 질환 위험 예측 정밀도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파스타는 이용자의 생활습관, 진료 이력, 웨어러블 기기 데이터 등을 통합 분석해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서비스로, 차바이오그룹의 오프라인 의료 데이터와 결합 시 예측 모델의 학습 범위와 정확도가 한층 확대될 수 있다.

 

의료 데이터 사업도 투자 우선 순위에 올렸다. 카카오헬스케어는 병원 정보시스템 연계 솔루션인 HRS와 개인 건강데이터 플랫폼 헤이콘을 중심으로 병원, 기업, 공공기관과의 데이터 연계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HRS와 헤이콘은 전자의무기록, 검사 결과, 처방 정보 등 병원 데이터를 안전하게 수집·표준화해 환자 본인과 의료진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차바이오그룹 산하 병원들과 연계할 경우 대규모 임상 데이터와 운영 데이터가 추가로 확보돼, 정밀의료·연구용 데이터 플랫폼으로 진화할 여지도 커진다.

 

병원 컨시어지 서비스 케어챗 역시 온·오프라인 연계 사업의 전면에 배치했다. 케어챗은 예약, 문진, 입퇴원 안내, 진료 후 관리 등 병원 이용 전 과정을 챗 기반으로 지원하는 서비스다. 차바이오그룹이 보유한 병원과 클리닉에 적용하면 환자는 온라인에서 상담과 준비 과정을 마친 뒤, 오프라인에서 실제 진료와 시술을 받는 연속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의료진은 사전 문진 자동화와 일정 관리 최적화 등으로 진료 효율을 높일 수 있어 병원 운영 측면에서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협력은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과 글로벌 의료네트워크 결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국내 디지털 헬스 기업과의 차별점을 만든다. 차바이오그룹은 미국, 호주,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6개국에서 77개 의료 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수준의 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스마트 헬스케어 솔루션 수출과 현지 맞춤형 디지털 헬스 서비스 출시를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 최대 민간 영리 종합병원인 LA 할리우드 차병원,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베트남에 걸쳐 46개 전문 클리닉 그룹을 운영하는 싱가포르 메디컬그룹, 호주 전역 4개 주에서 29개 의료 거점을 보유한 난임 분야 빅4 기업 씨티퍼틸리티 등이 디지털 전환의 시험대가 된다. 카카오헬스케어는 이들 기관의 예약·진료·추적관리를 디지털화하고, AI 기반 예후 분석과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결합해 스마트 병원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바이오그룹 역시 카카오헬스케어의 기술을 흡수해 그룹 차원의 스마트 헬스케어 역량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차바이오그룹은 생활공간과 커뮤니티, 의료기관을 연계한 커넥티드 헬스케어 모델과 시니어 헬스케어 서비스 확대를 추진 중이다. 여기에 카카오헬스케어의 AI와 빅데이터 분석 기술, 모바일 서비스 기획 역량이 결합하면 입주민·커뮤니티 구성원의 건강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의료기관 방문 전 단계에서 위험군을 조기 선별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딜을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구도 변화를 촉발하는 거래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상당수는 병원 정보시스템 연동이나 특정 질환 관리 앱에 집중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카카오헬스케어와 차바이오그룹의 결합은 대형 병원 체인, 전문 클리닉, 난임센터 등 다양한 전문 의료기관을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으로 묶어내는 실험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원격진료, 디지털 치료제, 병원 자동화 솔루션이 결합된 통합 모델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규제 측면에서는 각국 의료 데이터 보호법과 원격의료 규제가 사업 확장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의료법과 개인정보 보호 규율로 인해 플랫폼 기업이 의료행위 영역에 직접 진입하기 어렵다. 미국과 유럽도 의료 데이터의 국외 이전, 클라우드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헬스케어와 차바이오그룹의 협력 모델이 실제로 글로벌 사업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각 국가 규제 환경에 맞춘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와 컴플라이언스 전략이 필수 요건으로 꼽힌다.

 

황희 카카오헬스케어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중요성이 확대되는 시점에 이번 투자를 통해 자사의 기술력과 사업 역량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황 대표는 차바이오그룹과 협력해 국내와 해외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카카오는 이번 지분 교환이 카카오헬스케어를 매각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헬스케어 사업 강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이라고 선을 그었다.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의료네트워크가 맞물리는 이번 협력은 국내 헬스케어 산업이 새로운 성장 모델을 시험하는 분기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산업계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와 AI 기반 디지털 기술이 실제 병원, 클리닉, 생활공간에 얼마나 빠르게 스며들지, 그리고 각국 규제와 윤리 기준 속에서 어떤 사업 구조를 만들어낼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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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헬스케어#차바이오그룹#디지털헬스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