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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 30퍼센트 인하 카드”…노보, GLP1 대중화로 비만치료제 지형 흔든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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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계열 비만 치료제 가격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낮아지며 글로벌 대체육 시장 못지않은 바이오 블록버스터 전쟁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노보노디스크가 비만 치료제 위고비와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의 자가부담 약가를 크게 낮추면서, 기존 ‘프리미엄 고가 치료제’ 구도가 보험 기반의 대중 시장으로 재편되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일라이릴리와의 경쟁 구도가 강화되는 가운데 미국 공·사보험 커버리지 확대가 GLP1 시장 성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17일 미국 현지 시각 기준으로 비만·당뇨 치료제 위고비와 오젬픽의 최저 용량인 0.25밀리그램과 0.5밀리그램 제품에 대해 신규 자가부담 환자에게 내년 3월 31일까지 월 199달러에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첫 두 달 동안은 월 199달러가 적용되고, 이후에는 기존 월 499달러에서 월 349달러로 약 30퍼센트 인하된 가격에 약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처방은 동일하되 환자 본인부담 구조를 크게 낮춰 신규 환자 진입 장벽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와 체결한 비만·당뇨 치료제 약가 인하 합의의 연장선에 있다. 이달 초 노보노디스크와 경쟁사 일라이릴리는 자사 GLP1 계열 비만·당뇨 치료제를 정부 보험 프로그램에 월 245달러 수준에 공급하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원래 인하된 공공보험 공급 가격은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노보노디스크는 합의 시점보다 수개월 앞서 자가부담 환자를 대상으로 선제 가격 인하에 나섰다. 공보험 시장보다 현금 결제 및 민간보험 시장에서 먼저 공격적인 가격 전략을 쓰는 셈이다.

 

GLP1 약물은 혈당 조절과 식욕 억제를 동시에 유도하는 기전으로 개발된 펩타이드 기반 의약품이다. 기존 비만 치료제에 비해 체중 감량 효과와 심혈관계 위험 개선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폭발적 수요가 형성됐다. 다만 월 1000달러 안팎의 높은 약가 때문에 보험 미적용 환자 접근성은 제한적이었다.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 현금 가격을 499달러에 이어 349달러까지 단계적으로 낮추면서, 고가 특수 의약품에서 장기 복용이 가능한 만성질환 관리약으로 포지셔닝을 바꾸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결정은 일라이릴리보다 한 발 빠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릴리의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강력한 체중 감량 효과와 동시에 적극적인 마케팅을 앞세워 미국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넓혀왔다. 노보노디스크는 그동안 공급 부족과 경쟁 약물 공세로 일부 영역에서 입지 약화를 겪어온 만큼, 가격 탄력성을 활용해 처방 볼륨을 다시 확대하는 쪽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GLP1 계열 내에서 작용 기전 차이는 제한적인 만큼, 동일 계열 약물 간 경쟁에서는 가격과 보험 적용 범위가 핵심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노보노디스크의 가격 전략은 자사 플랫폼을 활용한 직접 판매 정책과 맞물린다. 회사는 올해 3월 노보케어 약국 DTC 플랫폼을 통해 보험이 없는 현금 지불 환자를 대상으로 위고비 가격을 기존 약 1350달러에서 월 499달러로 낮춰 판매한 바 있다. 같은 시기 일라이릴리는 릴리다이렉트 플랫폼에서 젭바운드의 2.5밀리그램 용량을 월 349달러, 5밀리그램을 499달러 수준으로 책정해 정가 1060달러 대비 큰 폭의 할인에 나섰다. 양사 모두 디지털 직접 판매 채널을 활용해 기존 유통 구조와 보험 체계 밖에서 가격 실험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인하는 단기적으로 약가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 우려를 낳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환자 기반 확대를 통한 수요 증폭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하에 따른 역효과 전망과 관련해 단점만 있는 구조는 아니라며 가격 문턱이 낮아지면 약물 접근성이 높아져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나고, 결국 처방 물량 증가가 매출을 보완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GLP1 계열 약물이 비만뿐 아니라 심혈관, 신장 질환 등 적응증 확장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초기 진입 환자 수 확대는 중장기 포트폴리오 가치와도 연결된다.

 

보험 측면에서도 시장 확대 여지는 남아 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비만 치료제 약가 인하 합의에 대해 가격은 내려갔지만 커버리지 확장과 처방 물량 증가로 매출 감소분이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 공공보험 프로그램에 비만 치료제 적용이 본격 확대될 경우 최대 4000만명 규모의 신규 환자층이 GLP1 치료에 접근할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시장 기반이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GLP1 계열을 둘러싼 경쟁이 차세대 제형과 복합제, 경구제 개발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주사제 위주의 현 구조에서 경구용 GLP1 또는 이중·삼중 작용제 등 후속 파이프라인이 등장하면, 현재 형성된 약가와 보험 기준을 다시 조정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은 비만 치료제 급여 확대 시 재정 부담과 의료적 필요성, 장기 안전성 데이터를 함께 검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정교화하고 있어 보험 등재 여부와 범위가 시장 지형을 가를 요인으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GLP1 비만 치료제가 단기적인 약가 경쟁을 넘어 만성질환 관리 패러다임을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비만을 질환으로 보고 적극 치료하는 의료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심혈관 질환과 당뇨, 골관절염 등 연관 질환 감소를 통해 사회 전체 의료비를 줄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급격한 수요 증가로 인한 공급 차질, 장기 복용에 따른 안전성 관리, 약가 규제 강화 가능성은 여전히 리스크로 남아 있다.

 

산업계는 노보노디스크의 선제 약가 인하가 GLP1 계열 경쟁의 ‘2막’을 여는 신호로 보고 있다. 향후 일라이릴리 등 경쟁사가 어떤 수준의 가격과 보험 전략으로 맞대응할지에 따라 미국 비만 치료제 시장 판도와 글로벌 매출 순위가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술과 효능 경쟁에 더해 가격과 제도, 보험 구조까지 동시에 설계해야 하는 복합 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산업계는 이번 약가 전략이 실제로 시장에 안착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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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노디스크#위고비#마운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