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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수 부족 추계 부정확” 감사원 지적…의협, 법적 대응 예고 파장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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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책 근거 논란이 감사원 감사 결과로 불붙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이 부정확한 의사 수급 추계에 기반했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의료계는 “정책 전 과정의 비합리성과 절차적 하자가 공식 확인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올해 초 의료대란까지 촉발한 의사 인력 정책의 과학적 근거와 통계적 정합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며, 향후 디지털 헬스케어와 필수의료 강화 전략 전반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의사 수급 추계 체계와 의정 협의 구조를 어떻게 재정비하느냐가 향후 보건의료 정책 신뢰 회복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은 27일 발표한 감사 결과에서 윤석열 정부 당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안의 근거가 된 의사 수급 연구가 전국 단위 총량 부족을 산출한 것이 아니라, 지역 간 불균형을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다고 판단했다. 현재 부족한 의사 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지역별 분포 차이를 전체 부족 인원으로 단순 해석해, 실제 총량 부족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에 시점이 다른 현재와 미래의 부족 인원을 단순 합산하고, 인구구조 변화 효과를 반영하지 않은 점도 핵심 문제로 지적했다.

감사원은 예를 들어 “현재 부족한 의사 수가 5000명이라고 가정해도, 이를 인구 고령화와 의료 수요 변화 등을 고려한 보정 없이 수용한 것은 통계 설계상 미흡하다”며 “특히 증원을 통해 취약지에 5000명을 충원할 경우 비취약지에서는 수요가 감소해 공급과잉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구조적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의사 인력 구성과 근로행태, 기술 발전, 진료 패턴 변화 등 구조적 요인의 가정에 따라 부족 인원 산정 값이 크게 달라지는 특성이 있는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를 충분히 모델링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대한의사협회는 감사 결과를 두고 즉각적인 입장을 내놨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정책 추진 과정 전반에 심각한 비합리성과 절차적 하자가 있었음이 공식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며 “핵심 문제점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의협은 앞서 전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안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의협의 감사 청구 내용에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절차적 위법성과 전문가 협의 과정 왜곡, 부당한 업무개시명령 발동, 필수의료 저해와 의료 생태계 붕괴를 초래했다는 의혹 규명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당시 정부가 응급의학과·외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인력 부족을 근거로 대규모 증원을 밀어붙였지만, 정작 정원 확대가 특정 필수 분야로 인력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 설계와 연계되지 않았다는 점이 의료계의 핵심 문제제기였다.

 

감사원도 “부족한 의사 수”라는 단일 지표만을 앞세운 정부 방식이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고 봤다. 단순 인원 확대가 아니라, 의료 인력의 지역·전문과목·근로형태별 배치 문제를 종합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당시 추계와 정책은 이런 측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 확대, 원격의료 규제 논의, AI 기반 진료보조 시스템 확산 등 의료 환경 변화까지 감안하면, 의사 수급은 정원 숫자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 문제라는 점도 다시 떠오르고 있다.

 

김 대변인은 “정부는 감사원이 지적한 모든 절차적 문제점을 인정하고, 앞으로 의료 현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중대 정책도 의료계를 포함해 충분한 협의와 논의 과정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의정협의체를 전반적으로 점검·개선해 의료계와 보다 폭넓은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며, 제도적 대화 채널 재정비를 촉구했다.

 

또한 현재 운영 중인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운영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김 대변인은 “위원회가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의협도 위원회에 참여해 합리적 결과 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전문가 의견 반영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의사 인력 수요 예측에 AI 기반 시뮬레이션, 빅데이터 수요 분석 등이 부분적으로 도입되고 있지만, 실제 정책 결정에 반영되는 과정에서는 이해관계자 협의와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가 남긴 교육·의료 현장의 후유증도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무리하게 강행한 의대정원 확대의 후유증으로 의대생, 전공의에 대한 의학교육의 혼란을 이제서야 바로잡아가는 과정에 있다”며 “급격히 불안해진 의료체계의 질서와 정상화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각자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등 잘못된 정책의 대가와 폐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한번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정 기간 의대생 수용 능력, 수련병원 인프라, 필수과목 교육시수 조정 등의 이슈가 산발적으로 불거지며, 교육현장과 임상현장 모두 혼선을 겪었다는 평가가 의료계 안팎에서 나온다.

 

이번 감사 결과는 향후 디지털 헬스케어 확산과 맞물려 의사 수급 정책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그간 원격진료, 인공지능 진단보조, 전자의무기록 고도화 등 IT·바이오 융합 기술을 통해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전략을 병행해 왔다. 그러나 의사 인력 총량과 분포, 기술 대체 가능 범위에 대한 근거가 흔들릴 경우, 관련 정책 조합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를 들어 고령화로 만성질환 관리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원격모니터링과 디지털 치료제가 어느 정도 범위까지 의사 직접 진료를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량적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글로벌 비교에서도 한국 의사 수급 정책의 한계가 부각된다. 유럽과 미국은 이미 지역·전문과목별 인력 배치를 정밀하게 설계하기 위해 통합 데이터 플랫폼과 예측 모델을 도입하고, 의료 인력 정책을 중장기 플랜으로 운영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번 감사 결과에서 드러난 것처럼 단기적 수요지표와 정치적 판단이 결합된 형태로 정원 정책이 추진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원 확대 여부와 상관없이, 의사 수급 예측과 정책 설계의 데이터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책·법적 책임 논의도 본격화될 조짐이다. 김 대변인은 “협회는 정부가 정책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제도 설계와 정책적 타당성을 확보해 의료계와 협력을 통해 무너진 의료체계를 바로 세울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2년 동안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책임자들에 대한 분명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감사원 결과를 토대로 당시 정책 결정 라인에 대한 행정·형사 책임을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향후 정부가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와 의정협의체를 어떻게 재구성할지, 그리고 디지털 헬스케어·필수의료 확충 전략을 어떤 근거와 방식으로 다시 설계할지가 의료계와 산업계의 핵심 관심사로 부상했다. 산업계는 이번 감사 결과와 의협의 법적 대응 선언 이후, 의사 인력 정책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IT·바이오 융합 기반 의료 혁신과 어떤 균형점을 찾게 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허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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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감사원#의대정원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