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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 밀도 높이는 마른 체형”…한국 여성, 40대 유방암 위험 키운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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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에서 유방암 발병 정점이 40대 후반에 몰리는 현상이 체형과 연관된 호르몬·유방조직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유방암은 여성호르몬 의존성이 강하고 유방 밀도가 높을수록 위험이 커지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마른 체형이 많은 아시아 여성에서 폐경 이행기 초기에 유방 밀도와 호르몬이 동시에 치솟으면서 위험 시점이 서구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결과가 한국 여성 특성에 맞는 정밀 검진 시점과 예방 전략 재설계의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류승호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 헬스케어데이터센터 교수, 장유수 코호트연구센터 교수, 장윤영 박사, 조유선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로 구성된 공동 연구팀은 폐경 이행기에 있는 한국 여성 4737명을 평균 7년간 추적 관찰해, 폐경 단계별 여성호르몬 변화와 유방 밀도 변화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 대상은 모두 한국 여성으로, 폐경 전후 과정을 장기간 추적한 대규모 코호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국제 표준 기준에 따라 여성의 폐경 단계를 4단계로 나눠 분석했다. 폐경 이행기는 월경 주기가 불규칙해지고 점차 사라지는 과도기로, 유방암 위험이 급격히 달라지는 시기다. 유방 밀도는 유방촬영 영상에서 지방보다 유선·섬유조직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를 뜻하는데, 밀도가 높을수록 영상에서 흰 부분이 많아지고 유방암 발생 가능성도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자동분석 프로그램을 활용해 모든 대상자의 유방 촬영 이미지를 수치화해, 주관적 판독이 아닌 데이터 기반 비교가 가능하도록 했다.  

 

체질량 지수는 저체중 18.5 미만, 정상체중 18.5에서 22.9, 과체중 23에서 24.9, 비만 25 이상 네 그룹으로 나눴다. 체질량 지수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으로, 지방량과 대사 상태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는 지표다. 연구진은 각 체형 그룹별로 폐경 단계가 진행될 때 여성호르몬 수치와 유방 밀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동시에 추적했다.  

 

분석 결과 저체중 여성에서는 폐경 이행기 초기에 여성호르몬과 유방조직 밀도가 함께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양상이 관찰됐다. 유방암은 에스트로겐 등 여성호르몬에 의해 성장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고, 유방 내 유선·섬유조직 비율이 높을수록 종양이 생기고 자라기 좋은 환경이 형성된다. 특히 이번 연구는 기존 서구 대규모 연구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마른 체형의 갱년기 초반 위험 구간’을 한국 여성 데이터를 통해 정량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반대로 비만 그룹에서는 폐경 이행기 동안 여성호르몬 수치가 감소하고 유방 밀도도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지방조직은 폐경 이후에도 에스트로겐을 일부 만들어내 유방암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지만, 이번 연구는 시기별 변화를 세밀하게 추적해 폐경 이행기 초기에 한정하면 저체중 여성의 유방암 위험 신호가 더 두드러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체형에 따라 호르몬·유방조직의 변곡점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동일 연령이라도 위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석했다.  

 

류승호 교수는 한국 여성의 체형적 특성이 이러한 결과를 설명하는 중요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여성은 서구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마른 체형이 많고, 이 특성이 폐경 이행기 초 호르몬 변화와 맞물리면서 서양 여성보다 더 젊은 나이인 40대 후반에 유방암 발생 정점이 나타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유방 밀도가 높은 한국 여성의 영상 특성까지 고려하면, 서구에서 설계된 검진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장유수 교수는 비만도와 호르몬 변화의 상호작용이 한국 여성의 유방암 발생 시기와 연관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 성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폐경 전후 여성의 체형과 호르몬 변화를 고려한 맞춤형 검진 주기 설정과 예방 전략 수립에 이번 분석이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예를 들어 동일한 40대 후반 여성이라도 저체중이면서 유방 밀도가 높은 경우, 표준 권고안보다 이른 시점부터 보다 촘촘한 영상 검진이나 위험 평가를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구에서는 유방암 발생 정점이 대체로 60대 이후에 나타난다. 서구 여성은 평균적으로 체질량 지수가 높고, 폐경 연령이 비교적 늦으며 호르몬 치료 사용 패턴도 다르다. 글로벌 유전체 연구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와 생활습관 요인이 인종별로 다르게 분포한다는 결과가 보고돼 왔다. 이번 한국 연구는 인종·체형·호르몬 환경 차이가 유방암의 ‘언제, 누구에게’라는 질문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음을 재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유방암 검진 정책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유방촬영을 기반으로 한 연령·주기별 권고안을 운영하고 있지만, 체형과 유방 밀도를 정량화해 위험을 세분화하는 정밀 검진 체계는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외에서는 유방 밀도 자동 분석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판독 기술을 연계해 개인별 위험도를 점수화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연구진의 이번 결과는 이런 디지털 도구에 체질량 지수와 폐경 단계 정보를 결합해, 아시아 여성에 특화된 위험 예측 모델을 만드는 근거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갱년기 여성 만성질환 예방 관리를 위한 전향적 연구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논문은 국제 학술지 유방암 리서치 2024년 10월호에 게재됐다. 국내 연구진이 한국인 코호트를 장기간 추적해 폐경 이행기 체형·호르몬·유방조직 변화를 입체적으로 규명한 자료라는 점에서, 향후 정밀 검진 가이드라인 개편과 예방 프로그램 설계 논의에 참고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결과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기반 위험 예측 솔루션과 맞춤형 검진 서비스가 실제 현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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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호#장유수#유방암리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