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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 중이라 선서 못 한다"…이상민·김용현, 한덕수 재판서 집단 증언 거부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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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내란 사건을 둘러싸고 전직 장관들과 사법부가 정면으로 맞붙었다. 핵심 피고인과 증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증언 거부와 법정 소란이 이어지면서 재판은 긴장 국면으로 치달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부장판사는 19일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건 속행 공판을 열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차례로 증인신문했다.

이날 오전 먼저 출석한 이상민 전 장관은 증인 선서 절차에서부터 버텼다. 그는 "관련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라며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선서를 거부할 수 있다. 저는 선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12·3 비상계엄에 관여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기소 돼 별도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가 선서 거부를 문제 삼자 긴장감이 높아졌다. 이진관 부장판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보고 이 전 장관에게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했다. 이 전 장관은 "그러시라"고 응수하며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어진 주신문 과정에서도 "관련 형사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내란 특별검사팀의 질문 대부분에 답변을 피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일정을 묻는 질문에는 "일일이 기억하기 어렵다"며 "워낙 바쁜 날이었다. 일정도 많았고, 기억도 안 나고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특검팀이 "당일 오전 국무회의 후 김 전 장관과 이야기하던 중 '오늘 오후 9시쯤 들어오라'고 했는데, 왜 들어오라고 했느냐"고 캐묻자, 이 전 장관은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짧게 잘랐다.

 

질문 공방은 신경전으로 번졌다. 특검팀이 과거 진술조서를 제시하며 "소방청에 전화한 게 단전·단수 지시가 아니면 대상이 되는 언론사 5곳을 말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묻자, 이 전 장관은 "이게 한 전 총리에 대한 것과 관련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한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인데 왜 저에 대한 것을 물어보시느냐.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증언 거부가 이어지자 신문은 약 1시간 만에 마무리됐다. 재판 말미 재판부는 "증인이 재판받고 있는데, 저희 재판 과정에서 폐쇄회로 CCTV 등 정황을 봤을 때 깊이 관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걸 고려해 증언 거부를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형사재판 하면서 선서 거부는 처음 봤다. 사유가 없어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히자, 이 전 장관은 "즉시 이의제기한다는 것을 공판조서에 남겨달라"고 요구했다.

 

오후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석에 섰다. 김 전 장관은 전날 불출석 사유서를 냈지만, 재판부가 구인영장 발부를 예고하자 입장을 바꿔 출석했다. 그는 선서에 앞서 "현재 진행 중인 본인의 형사 재판과 관련돼 있어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후 내란 특별검사팀의 모든 질문에 증언 거부권을 행사했다.

 

특검팀은 계엄 당시 각 부처에 배포할 지시 문건 작성 여부, 이상민 전 장관 명의 지시사항 문건에 MBC와 JTBC 등 특정 언론사 6곳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가 포함됐는지, 또 한 전 총리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 전 장관,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국무회의 소집 대상 6명으로 정한 경위 등을 물었지만, 김 전 장관은 일절 답변을 거부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의 행동은 별도 파장을 낳았다. 이날 법정에는 김 전 장관 측 이하상 변호사가 신뢰관계 동석을 신청하며 함께 입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뢰관계 동석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이하상 변호사가 계속 법정에 머물자 재판부는 "누구시냐. 왜 오신 거냐. 이 법정은 방청권이 있어야 볼 수 있다. 퇴정하라"고 제지했다. 이 변호사가 "퇴정하라는 거냐"고 맞서자, 재판부는 "감치하겠다. 나가시라"고 재차 경고했다.

 

끝내 퇴정을 거부하자 재판부는 "감치하겠다. 구금 장소에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 변호사는 "직권남용"이라고 항의했고, 법정 경위들에 의해 끌려 나갔다. 재판부는 법정 질서 문란 행위로 보고, 이 변호사에 대한 감치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다.

 

앞서 재판부는 이날 오전부터 강경 기조를 예고했다. 이진관 부장판사는 "재판부에는 질서 유지 의무가 있다. 위반 행위가 있을 시 1차 경고, 2차 퇴정, 3차 감치를 위한 구속을 하겠다"며 소란 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강조한 바 있다.

 

12·3 비상계엄 사건 재판이 격화하는 가운데, 이날 오후 4시에는 윤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이 내란 관련 재판 법정에 증인 신분으로 서는 것은 처음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지만, 재판부의 구인영장 집행 방침이 전해지자 입장을 바꿔 김홍일 변호사 동석 조건으로 법정에 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전직 총리와 장관, 대통령을 둘러싼 내란 관련 증인신문을 이어갈 계획이다. 증인들의 집단적인 진술 거부와 법정 내 충돌이 계속되는 만큼, 향후 재판부의 강경한 법정 통제와 내란 사건 수사의 향방에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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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김용현#한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