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연예인 술자리 갑질 논란”…디지털 이슈, 플랫폼 윤리 흔든다

신도현 기자
입력

방송인 박나래를 둘러싼 이른바 나래바 논란이 단순 연예계 가십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 윤리와 온라인 여론 형성 구조를 들추는 계기로 번지고 있다. 사적 공간에서 이뤄진 술자리 강요 의혹과 직장 내 괴롭힘 주장이 유튜브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플랫폼 기업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특히 과거 방송에서 가볍게 소비됐던 발언들이 알고리즘 추천을 타고 재유통되며, 온라인 폭로 문화와 2차 가공 콘텐츠의 파급력이 도마에 올랐다.

 

최근 박나래의 전 매니저들은 나래바에서 상시 대기와 술자리 강요, 준비와 뒷정리까지 전담했다고 주장하며 특수상해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박나래는 전 매니저들을 공갈미수 혐의로 맞고소하고 방송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오프라인의 노무 분쟁과 폭언·폭행 여부가 핵심이지만, 실제 여론은 관련 증언과 과거 방송 클립이 디지털 공간에서 증폭되는 과정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논란이 커진 계기 중 하나는 2018년 tvN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의 한 장면이 다시 소환된 것이다. 걸그룹 오마이걸 멤버 유아와 승희가 당시 멤버 효정을 통해 나래바 초대를 받았으나 소속사의 만류로 방문하지 못했다고 언급한 부분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영상 플랫폼에서 다시 확산됐다. 유아가 회사에서 안 된다고 했다며 술자리에 대한 기대감을 언급하고, 신동엽이 회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남자 연예인들과 가까이 지내라고 하더라는 멘트를 남긴 장면은 당시에는 가벼운 예능 코드로 소비됐지만, 지금은 연예계 음주 문화와 권력관계를 상징하는 자료로 재해석되는 모습이다.

 

방송 클립이 재확산되는 과정에서 플랫폼 알고리즘과 사용자 큐레이션의 역할도 부각된다. 과거 예능 장면은 짧게 편집된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재가공돼 숏폼 위주 플랫폼과 SNS에서 회람되고 있다. 비슷한 키워드를 가진 폭로성 영상이나 논쟁성 게시물과 함께 추천되면서, 사건의 맥락보다 자극적인 문구와 일부 발언만 부각되는 구조다. 여기에 댓글과 2차 편집물이 덧붙으면서 원래 발언 의도와 시점이 희미해지는 현상도 관찰된다.

 

나래바에 대한 박나래의 자의적 서사 역시 디지털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2022년 예능 신발 벗고 돌싱포맨 출연 당시 10년간 운영해 온 나래바를 소개팅 명소로 표현하며 공식적으로 50쌍, 비공식적으로 100쌍 정도 커플이 여기서 탄생했다고 말했다. 사랑의 화살표가 겹치지 않도록 남녀 성비를 맞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발언들은 공개 당시 큰 논란이 없었지만, 현재는 술자리 강요와 직장 내 괴롭힘 주장과 결합돼, 사적 공간 운영 방식과 권력 불균형이 연결된 것 아니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개인의 사생활과 직장 내 관계, 연예계 권력 구조가 하나의 이슈 묶음으로 소비되는 특성이 강하다. 전 매니저들은 나래바 관련 업무가 근로계약 범위를 벗어나고 폭언·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박나래 측은 법적 책임을 다투는 국면이다. 그러나 여론은 법원 판단보다 앞서, 플랫폼 위에서 생산되고 반복 재생되는 내러티브에 의해 형성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포함되면서, 향후 온라인에서의 폭로와 반박, 2차 유통 과정이 수사와 재판에서 어떻게 다뤄질지도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연예인 개인 일탈 차원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의 디지털 리스크 관리 이슈로 보고 있다. 과거 예능 대사와 인터뷰는 이미 수많은 서버에 저장돼 검색과 추천 대상이 돼 있고, 편집 영상과 캡처 이미지가 맥락과 떨어져 유통될 수 있다. 연예기획사와 방송사는 콘텐츠 제작 단계에서부터 향후 재유통과 2차 편집을 고려한 내부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는 추세이며, 이번 사안이 이런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플랫폼 기업의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도 확산 조짐을 보인다. 알고리즘이 이슈 관련 영상과 게시물을 연쇄적으로 추천하면서 특정 인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과열되는 구조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법적 규제 없이 자율조치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처럼 고위험 콘텐츠 추천 구조의 투명성과 조정 의무를 강화하는 국제 규범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에서도 연예계 이슈를 계기로 플랫폼 책임론이 재점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노무와 젠더 이슈도 함께 얽혔다.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술자리 강요 문제는 과거에도 반복 제기돼 왔으나, 이번에는 연예인의 사적 공간이라는 특수한 무대가 더해졌다. 온라인에서는 매니저와 소속 연예인 사이의 계약 관계, 연령과 성별, 권한 차이까지 한꺼번에 논의되며, 향후 엔터 업계의 근로 환경 기준과 내부 고충 처리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는 내부 고발과 폭로가 곧바로 여론 재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이 대응 매뉴얼과 내부 신고 채널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과와 입장 발표 역시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박나래는 8일 입장문을 통해 전 매니저와 대면해 오해를 풀었으며 자신의 불찰을 언급하며 반성을 표했다. 하지만 전 매니저 측이 사과나 합의는 없었다고 즉각 반박하면서, 서로 다른 메시지가 동시에 온라인에 떠다니는 국면이 형성됐다. 각자의 입장은 텍스트 캡처와 짧은 영상으로 재가공돼 재배포되고 있고, 언론 보도와 1인 미디어 해설 영상, 댓글을 거치며 새로운 해석이 덧붙는 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연예계 이슈를 다루는 온라인 생태계의 자율 규범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형사 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한 추측성 편집 영상과 허위 사실 유포, 맥락을 삭제한 발췌 재생산이 개인의 명예 훼손과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동시에 권력형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드러내는 통로로서 디지털 플랫폼이 가진 긍정적 기능도 있어, 표현의 자유와 피해 방지 사이 균형을 잡는 논의가 요구된다.

 

엔터 업계와 플랫폼 기업이 사적 공간에서 비롯된 논란이 디지털 공론장으로 비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준과 책임을 설정할지에 따라 향후 유사 사안의 파장이 달라질 수 있다. 산업계는 이번 논란이 법적 판단과 별개로, 연예 콘텐츠 생산과 유통 구조, 그리고 플랫폼 알고리즘의 운용 원칙까지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지 주시하고 있다.

신도현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박나래#나래바#전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