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도 어머니 얼굴도 희미하다”…이산가족 3만5천명, 명절마다 한숨 깊어져
남북 분단의 상처가 깊어지는 명절, 이산가족들이 또다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진 고령 이산가족과 가족들의 상봉이 오랜 세월 정치적 교착에 묶여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산가족의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의 정책적 역할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99세 박복주 어르신은 추석을 앞둔 지난 29일 대한적십자사 전북지사에서 위로 선물을 받고 “엄마 모습도 고향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66세 딸 유씨는 “어머니가 19살 시절인 1940년대 황해도에서 결혼 후 익산으로 내려와 가족과 생이별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으나, 조카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년 전 금강산을 방문했을 때에도 고향 마을을 향해 마음으로 인사만 하고 돌아왔다는 씁쓸함이 더해졌다.

이산가족이 처한 현실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통일부 남북이산가족찾기 시스템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국내 생존 이산가족은 3만5천311명이다. 전체 신청자 13만4천489명 중 73.4%인 9만9천178명은 이미 별세했다. 전북 지역에서만 602명이 지금도 가족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적 대치 상태 속에서도 이산가족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설과 추석을 앞두고 북에 가족을 둔 어르신들을 찾아 위로하고 있다”며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하루빨리 풀어야 할 인도적 과제”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정부와 협력해 상봉 성사에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남북관계 긴장 장기화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갈수록 생존 이산가족이 빠르게 줄고 있다는 점을 들어 “남북관계와 별도로 인도주의 교류·상봉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산가족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향후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경우,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 현안 해결 방안을 집중 모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