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캐스팅보트”…통일교, 대선 직전 여야 동시 접촉 정황 드러나
정치권력을 향한 종교계의 접근과 그 경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통일교 지도부가 여야 대선 캠프와 광범위하게 접촉하며 조직적 영향력을 모색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민중기 특별검사팀 수사가 정국 변수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1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통화 녹취록과 수사 내용을 종합하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2022년 2월 28일 통일교 핵심 간부와의 통화에서 20대 대선을 두고 교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언급했다. 그는 대선을 불과 9일 앞둔 당시 통화에서 “우리가 그래도 캐스팅보트를 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단 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기업체 등 산하 조직 규모에 비춰 통일교가 선거 결과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녹아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윤 전 본부장은 같은 통화에서 그해 2월 서울 롯데시그니엘 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와 관련해 자신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측 초청 성과를 거론하며 “펜스하고 윤을 브릿지해준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펜스 정도는 붙여줘야 ‘저쪽에 신세를 졌다’고 생각을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거는 액션 해줬다”고 말했다. 당시 행사에는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참석했고,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도 이 자리에 나와 펜스 전 부통령을 만났다.
윤 전 본부장은 국민의힘뿐 아니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 측과도 접촉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화에서 “이재명 쪽도 다이렉트로 어머님(한학자 총재) 뵐려고 전화가 왔다”며 “김현종 통해서 또 어프로치해 왔는데 다행히 만나진 않았고, 양쪽 다 ‘우리가 어디 한쪽을 밀었다’ 이런 건 느껴지지 않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했다가 이거 또 5년이 괴로워진다”며 “결국 5년 뒤에 다시 우리가 뭔가 영향을 주려면 우리 플랫폼이나 비즈니스나 프로젝트가 다 바뀌어야 한다”고도 해, 대선 이후에도 지속적 정치 영향력 확보 방안을 모색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윤 전 본부장은 여야를 폭넓게 접촉하는 가운데 통일교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한학자 총재의 선택을 기다렸다는 취지의 언급도 남겼다. 그는 “어머님 결정하시면 저희는 움직입니다. 대신 어렵더라, 양쪽 해 보니까 통일교 리스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다행히 이제 3∼4주 전에 Y(윤 전 대통령)로 하면 좋겠다 그랬다”고 말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이 같은 발언을 통일교와 국민의힘 사이 유착 정황을 보강하는 단서로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윤 전 본부장 측은 특정 정파만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전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공판을 통해 “통일교의 평화주의 이념에 따라 여러 정파를 아우르려면 당시 국민의힘과 민주당 등 대선 후보가 참석하는 게 절실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당시 이 대통령 캠프 실용외교위원장)과 김현종 국제통상특보단장 등 민주당 캠프 인사들도 평화 서밋 행사에서 펜스 전 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자금 수수 의혹도 불거졌다. 윤 전 본부장은 2022년 1월 25일 통일교 간부와의 통화에서 양측 후원회장을 통해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두 사람은 평화 서밋에 참여할 미국 측 유력 인사 섭외를 논의하면서, 이 대통령 측 핵심 인사인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을 비롯한 다수 여권 인사를 거론했다. 윤 전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라인을 언급하며 “2019년부터 여권 최고위급 인사들과 차근차근 인연을 쌓아왔다”고 하면서도, 민주당이 통일교에 대한 국내 여론을 의식해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윤 전 본부장은 야권 일각에서 통일교와의 접점을 둘러싸고 공을 다투는 상황을 예상하며 “야권 보니까 선대위에서 서로 통일교 자기가 잡았다고 하려고 할 것. 나는 그게 싫다”고 말했다. 또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두고 “곁다리”라고 표현하면서, 대선 후보를 직접 움직일 수 있는 핵심 인물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를 드러냈다. 두 사람은 이후 윤 전 본부장이 민중기 특별검사팀 조사 과정에서 금품을 지원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은 지난 8월 특검팀에 제출한 자필 진술서에서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 전 의원, 김 전 의원 등에게 통일교 측 자금이 전달됐다는 취지로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금품수수 의혹을 내사 사건으로 분류해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전 전 장관에게는 뇌물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해저터널 등 통일교 숙원사업을 청탁하는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임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시했다.
당사자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전재수 전 장관과 임 전 의원, 김 전 의원 측은 언론 등을 통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정치권 일각에선 통일교를 둘러싼 의혹이 확대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파장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전 본부장과 통화한 통일교 간부는 녹취록에서 윤 전 본부장의 행보를 두고 “청와대나 인수위원회, 그 이상까지도 라인을 만들어본다는 꿈을 가졌으니 보따리 들고 쫓아다닌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중진 A의원과 국민의힘 중진 B의원도 정치권에 접근하기 위한 또 다른 통로로 거론된 것으로 전해졌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윤 전 본부장이 한학자 총재의 뜻에 따라 유착 대상을 국민의힘으로 정한 뒤, 대선 전후로 정치권에 쪼개기 후원을 하고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금품을 전달하는 등 조직적인 작업에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통일교 측은 이러한 의혹에 대해 강하게 선을 그었다. 통일교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이익을 추구하는 순간 그 신앙의 본질을 잃게 된다”며 “저희가 70여년간 견지해 온 불변의 기본 가치”라고 밝혔다. 이어 “조직 차원에서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특정 정당을 지원해 이익을 얻으려는 계획·의도를 가진 적 없다”며 “개인의 일탈을 막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녹취록과 자필 진술서,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해 통일교와 정치권의 자금 흐름, 대선 전후 인사 접촉 경위 등을 추가로 규명할 방침이다. 정치권은 통일교와의 연루 가능성을 둘러싸고 방어 논리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국회 차원의 후속 논의와 책임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