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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 위의 흐린 풍경”…대구의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공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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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지 위의 흐린 풍경”…대구의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공간을 걷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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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떠남이었지만, 오늘 대구의 9월은 흐린 하늘 아래 낯선 잿빛과 익숙한 온기로 다가온다. 분지 위에 펼쳐진 이 도시는 날씨처럼 오묘한 빛깔로 여행자의 풍경을 바꿔 놓는다. 예전엔 대구를 뜨거운 여름과 활기로만 기억했다면, 이제는 흐림과 고요 속에서 계절과 역사의 온기를 다시 느끼는 일상이 됐다.

 

요즘,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대구여행 인증' 사진들이 SNS에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27도의 기온, 70%의 습도, 은은한 바람을 타고 달서구 대구수목원 숲길엔 삼삼오오 산책객이 머문다. 한때는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이 자리는, 지금은 1,750종의 식물이 파도를 펼치듯 수풀을 이루고 있다. 화목원에서 약초원, 야생초화원에 이르기까지 주제별 정원을 누비는 이들은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을 느끼러 일부러 온다”고 고백했다.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대구
사진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대구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이어진다. 대구수목원은 매년 방문객이 늘고 있고, 가족 단위 주말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도시 근교에서 만나는 복원 생태 공간의 만족감은 단순 여가를 넘어, 개인에게 쉼과 자연 회복력을 선물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삼국유사테마파크에서도 그 여운은 이어진다. 어린이는 동화처럼, 어른은 추억처럼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 곳곳엔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색 체험이 가득하다. 댓글 반응을 살펴보면 “차분한 날씨에 테마파크 산책이 더 운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었다”는 평가도 많다.

 

청라언덕을 거닐다 보면, 잔잔한 도시의 숨결과 19세기의 흔적이 번지듯 맺힌다. 선교사의 주택에서, 오래된 집의 창문과 야트막한 언덕길에서 “동무생각”의 멜로디가 마음을 거친다. 이곳을 찾은 30대 방문객은 “잠시 과거와 마주하며 한적한 산책로를 걸으니, 스스로도 조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다 보니, 대구의 여행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코스가 아니라, 각기 다른 시간의 층위를 산책하는 일이 되고 있었다.

 

작고 사소한 여정이지만, 흐린 날씨 속에서 만나는 나무와 거리, 이방인으로서 남긴 발자국이 우리 삶의 감수성을 조금씩 달라지게 한다. 지금 이 풍경은 누구나 겪고 있는 ‘내 일상’의 또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끝났지만, 이 계절의 대구가 남긴 감정은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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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목원#삼국유사테마파크#청라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