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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본법 시행 가시화…윤리정책, 혁신 촉진자로 전환 주목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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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본법이 그동안 선언 수준에 머물렀던 AI 윤리정책을 산업 현장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새로운 의무가 생기는 규제처럼 비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이 스스로 윤리 역량을 체계화할 수 있도록 돕는 촉진자로 설계돼야 산업 경쟁력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차원에서 AI 안전과 혁신을 동시에 요구하는 흐름이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도 법과 제도를 실제 이행 가능한 도구 중심으로 재정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함께 27일 2025 AI 윤리 공개세미나를 열고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을 전제로 한 향후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이번 행사는 AI 윤리 원칙을 넘어, 기업이 따라야 할 절차와 검토 항목, 인증 제도 등 실제 이행 수단을 제도권 안에 담는 작업을 가속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조강연을 맡은 문명재 AI윤리정책포럼 위원장은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확대되는 만큼, 선언적 원칙이 아닌 실천 가능한 윤리 정책 도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위원장은 기업의 AI 윤리 활용을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가이드라인, 공신력 있는 인증 제도, 모범사례 발굴과 확산 프로그램 등을 핵심 수단으로 제시했다. 특히 인공지능 기본법 시행이 이런 도구들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제공하는 시점이 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진 종합토론에는 학계, 산업계, 법조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인공지능 기본법 이후 예상되는 과제와 보완 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기본법이 윤리정책의 현장 적용을 본격화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법과 제도가 과도한 규제에 머물 경우 기업 혁신을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신뢰 기반을 조성하는 인프라 역할에 무게를 두고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제시됐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현장 적용을 염두에 둔 구체적인 결과물도 공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채용 서비스를 대상으로 한 2025년 AI 윤리영향평가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윤리영향평가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절차로, 과기정통부는 프라이버시 보호, 포용성, 책임성, 투명성, 공정성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긍정 효과와 위험 요인을 함께 분석했다. 채용 과정에서의 편향 최소화, 설명 가능한 평가 기준 제시, 개인정보 최소 수집 같은 항목이 실제 평가 지표로 다뤄졌다.  

 

정부는 또 인공지능 기본법에 근거해 마련한 민간자율AI윤리위원회 표준지침안도 소개했다. AI 개발과 활용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경우, 개별적으로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인력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표준지침안은 위원 구성, 심의 절차, 이해상충 방지, 기록 관리 등 필수 요소를 틀로 제시해 기업이 이를 기반으로 조직 규모와 업종 특성에 맞게 위원회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이를 통해 민간의 자율 규범 형성을 돕고, 법적 의무 준수를 넘어선 윤리 수준 제고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김경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정책실장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 조성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민간이 스스로 건강한 인공지능 생태계를 만드는 주체가 돼야 하며, 정부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관심과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 노력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기업이 윤리 원칙을 준수하며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에서도 AI 윤리 포럼과 같은 공개 논의를 꾸준히 이어가며 법과 제도, 시장의 요구를 조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인공지능 기본법을 계기로 마련되는 윤리 도구와 지침이 현장의 부담을 키우는 규제가 될지, 혁신 역량을 높이는 촉진자가 될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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