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거리의 테러 두고 볼 수 없다"…민주당 기초단체장들, 혐오·비방 현수막 입법 촉구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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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비방 현수막을 둘러싼 정치권 갈등이 국회로 번졌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장들이 국회에 직접 나서 현수막 게시 중단과 입법을 요구하며 정부와 여야를 동시에 압박했다. 거리 곳곳에 내걸린 자극적 문구가 지방행정의 갈등 요인으로 번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표면화된 셈이다.

 

민주당기초단체장협의회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혐오·비방 현수막의 무분별한 게시 실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협의회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들로 구성된 기구다.

협의회는 회견문에서 "지방자치의 최일선에서 국민 생활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기초단체장으로서 거리가 무분별한 혐오와 비방으로 오염되는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혐오·비방 현수막 난립은 국민 정서와 공공 질서를 파괴하는 거리의 테러"라며 "국민적 공분과 현행법의 무력함 앞에 즉각적인 입법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협의회는 특히 행정안전부가 11월 18일 내놓은 옥외광고물법 금지광고물 내용금지 적용 가이드라인을 겨냥해 "미봉책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행안부 가이드라인은 현행법 범위 안에서 혐오·비방 표현을 제한하겠다는 취지지만, 법적 강제력이 약하다는 문제가 반복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협의회는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첫째로 모든 정치 주체를 향해 인종차별, 성차별, 가짜뉴스, 혐오·비방 현수막 게시를 즉각 중단하고 자정 노력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둘째로 국회에는 혐오·비방 현수막 방지를 위한 법률을 조속히 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셋째로 정부에는 현행법 내에서 가능한 모든 행정적 조치를 시행하고, 강력한 법 집행 의지를 분명히 할 것을 주문했다.

 

이날 회견에는 협의회장인 최대호 안양시장, 박승원 광명시장, 김경일 파주시장, 조용익 부천시장, 김미경 은평구청장, 진교훈 강서구청장,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참석했다. 국회의원으로는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인 황명선 의원과 염태영 의원, 관련 법안을 발의한 박주민 의원이 함께했다.

 

최대호 협의회장은 국제 규범을 언급하며 국내 논의를 촉구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유엔인종차별철폐 협약에 가입돼 있는데 이는 인종차별과 혐오 표현을 하지 않고 이를 제지하기 위한 사회적 의무를 지겠다고 약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거리와 광장이 혐오와 갈등이 아닌 소통과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혐오·비방 현수막 규제를 둘러싼 입법 논의는 국회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11월 20일 혐오·비방성 표현을 담은 정당 현수막 관리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정당이 내거는 현수막 내용에 대한 규제 근거와 행정 처분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돼 왔다.

 

다만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과 정당 간 유불리 시비가 맞물리면서 향후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여야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혐오·비방 표현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규제 기준을 어디까지 설정할지를 둘러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회는 관련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를 계속 이어갈 전망이다. 정치권은 혐오·비방 현수막 문제를 놓고 여야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현장 집행 방향을 둘러싼 공방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윤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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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기초단체장협의회#혐오비방현수막#옥외광고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