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명 부족에 5로 나눠"…이관섭이 만든 2천명 증원, 감사원 "책임 있는 정부 자세 아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다시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감사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 시기 추진된 의대 정원 연간 2천명 증원 방안의 산출 과정을 공개하면서, 정부의 결정 구조와 의료계와의 갈등 관리 방식에 대한 공방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감사원은 27일 의대 증원 추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윤석열 전 정부가 의대 정원을 연간 2천명 늘리기로 한 수치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조사 내용을 설명했다. 감사에 따르면 최초로 2천명이라는 숫자를 입에 올린 인물은 이관섭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다. 당시 이 전 실장은 국정기획수석으로 재직 중이었다.

보고 경위를 보면, 2023년 6월 조규홍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매년 500명 수준의 의대 증원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충분히 늘려야 한다며 사실상 재검토를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이 전 실장이 연간 2천명 증원 규모를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실장이 내놓은 수치의 기초 자료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KDI, 서울대학교 등 3개 기관의 연구 논문이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들 연구를 토대로 2035년 기준 의사 부족 규모가 약 1만명에 달할 것으로 판단했고, 이 전 실장은 5년간 증원을 추진하기로 한 정책 구상에 맞춰 1만명을 5로 나눠 연 2천명 증원안으로 제시했다고 감사원에 진술했다.
다만 이 전 실장은 2천명이라는 구체적 숫자를 사전에 윤 전 대통령과 상의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감사원은 조사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이 본인 임기 중 의대 증원 문제를 가급적 매듭지으려 했다는 취지의 관련자 진술도 확보했다고 전했다. 윤 전 대통령의 임기는 2027년까지로, 2025년부터 5년간으로 설계된 의대 증원 계획 기간 중간에 종료된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윤 전 대통령이 임기 내 최대한 큰 폭의 증원 기조를 정해 두면 이후 정부에서도 그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실장 역시 감사에서 나중에 여러 상황 때문에 연간 증원 규모가 줄어드는 일이 있더라도 처음에는 큰 숫자로 나가는 것이 더 맞다고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돼 온 역술인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역술인 천공 등 대통령 주변 인사가 의대 증원 수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해 왔다. 그러나 감사원은 2천명이라는 숫자를 처음 말하기 시작한 사람은 이 전 실장이라며 역술인 개입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관여 여부를 묻는 질문도 나왔다. 감사원은 의대 증원 결정 과정과 관련해 김 여사까지 조사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김 여사 관련 의혹은 감사 대상 및 사실관계 확인 범위 밖에 남게 됐다.
감사 결과에서는 대통령실과 정부가 증원 규모를 정하는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와의 협의 절차를 건너뛴 정황도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당시 보건복지부 내부에서는 2천명이라는 수치를 의사단체나 협의체에 제시할 경우 즉각적인 파업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 의협도 먼저 적정한 증원 규모를 제시하지 않았는데 왜 정부가 먼저 구체적 숫자를 내야 하느냐는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이러한 판단이 국민 건강과 의료체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사 수급 문제는 중장기 수급 전망, 지역 및 필수의료 인력 배치, 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인데도, 핵심 이해당사자인 의사단체와의 소통보다 갈등 회피에 무게를 실은 결정 과정이었다는 비판을 제기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감사원 발표를 계기로 여야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야권은 이미 윤 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두고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라며 비판 수위를 높여 왔다. 여권은 의료 접근성 개선과 지역 의료 인력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며 증원 필요성을 거듭 제기해 왔다.
향후 국회와 정부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의사 수급 대책 전반을 재점검할 전망이다. 여야는 정기국회와 향후 회기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방안과 의료계와의 협의 구조를 놓고 다시 치열한 논의를 벌일 것으로 보이며, 정부도 의료 인력 확충 정책의 설계와 추진 절차를 보완할 방침을 검토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