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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달인들, 산길에서 식탁까지”…한국기행, 아흔의 철학→속도를 거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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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 달인들, 산길에서 식탁까지”…한국기행, 아흔의 철학→속도를 거슬렀다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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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청춘의 속도로부터 한발 곁에 선 어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천천히 삶을 가꾸는 순간, '한국기행–저속노화의 달인'은 다시 한 번 나이 듦의 의미를 섬세하게 짚어냈다. 도봉산을 오르는 신옥자의 건강한 걸음에서, 대구 서영갑의 꾸준한 운동 루틴, 홍성 조병예의 백년 세월을 건너온 손끝의 온기가 차분하게 그려졌다. 여기서 삶이란, 흙냄새와 바위길, 고요한 밥상 위 사계절을 닮은 시간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이들. 해마다 조금씩 더딘 걸음을 걸었던 그 인생에 세월만이 줄 수 있는 단단함이 어른거렸다.

 

특히 신옥자라는 이름 앞에는 '도봉산 왕언니'라는 애칭이 붙는다. 九十 이 년의 시간을, 바위길을 오르내리며 견고하게 채운 신옥자는 하루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산행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무릎 힘을 아끼기보다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고집에는 젊은 산악인의 긍지와 묵직한 유머가 묻어난다. "산은 내 몸을 다스리는 약"이라 말하는 신옥자, 그 표정과 말끝에는 세월에 순응하되 쉽게 늙지 않는 삶의 비밀이 은은하게 비친다.

“아흔에도 오르는 산길”…‘한국기행’ 저속노화 달인들, 건강의 철학→삶의 속도 바꾼다 / EBS
“아흔에도 오르는 산길”…‘한국기행’ 저속노화 달인들, 건강의 철학→삶의 속도 바꾼다 / EBS

한편, 대구에서는 90세 서영갑이 힘찬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또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스스로 만든 체육관에서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 꾸준함과 인내로 채운 26년의 기록이 몸과 마음에 깃든다. 교직 은퇴 후 시작한 반복되는 운동과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긍정은 건강한 노년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이어서 만난 조병예의 하루는 또 다르게 흐른다. 경쾌하게 들판을 걷고, 오일장에서 가족과 장사꾼 시절을 추억한다. 101세의 시간에 지치지 않는 에너지, 대가족을 돌보며 이어온 강인한 생활 습관은 백 년의 연륜이 고스란히 배여 있다. 국화빵을 건네며 보이는 따뜻한 손끝은 세대를 이어주는 다정함으로 빛난다.

 

지리산 금수암에서는 대안스님과 지은스님이 자연이 주는 식재료로 싱그러운 밥상을 차린다. 건강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시작한 사찰음식 연구, 언니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차린 소박한 식탁은 몸과 마음을 함께 달랜다. 햇살 머문 마당의 작은 그릇마다 따스함과 자연의 생명이 담겼고, 식탁은 곧 치유의 장소가 된다.

 

구례 가랑마을의 할머니들은 치매나 요양원도 멀리하며 평생 밭일로 쌓은 건강과 가족을 지키는 노하우를 매일같이 실천한다. 직접 딴 나물로 차려낸 밥상에서 피어난 소녀 같은 웃음소리는 장수와 행복의 조용한 증거다.

 

마지막으로 순천의 조계산 흙집 주인 박귀심은 대도시와 성공이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땅과 가족으로 돌아왔다. 긴 손길로 직접 집을 짓고, 플라스틱 대신 흙과 나무를 가까이 하며 사는 그의 철학은 “흙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는 한 줄 신념으로 응집된다. 건강을 되찾은 삶은 도회지의 속도가 아닌, 자연이 주는 여유 속에서 새로이 태어난다.

 

이처럼 '한국기행–저속노화의 달인'은 산길, 들판, 회관, 사찰, 흙집에서 한 삽씩 퍼 올린 건강의 철학과 삶의 속도를 담담히 포착했다. 어느새 느려졌지만 결코 멈춘 적 없는 어르신들의 매일은 가족과 자연, 작은 식탁 위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본 방송은 9월 22일부터 26일까지 밤 9시 35분, 다섯 번의 여정을 통해 시청자에게 깊은 사유와 위로를 전한다.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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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자#한국기행#저속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