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윤석열, 취임 반년 뒤부터 계엄 구상 정황
정국을 뒤흔든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싸고 조은석 특별검사팀과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특검이 윤 전 대통령의 외환 혐의 공소장에서 계엄 준비 시점을 2022년 말로 특정하며 임기 전 기간에 걸친 비상계엄 구상 정황을 적시했기 때문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공소장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 반년 만인 2022년 11월부터 이른바 비상대권을 언급하며 비상계엄을 구상했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여소야대 정국이 구조화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회의 극한 대치가 계엄 카드 모색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특검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11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 관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가진 만찬 자리에서 김종혁 비상대책위원 등에게 강경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나에게는 비상대권이 있다. 싹 쓸어버리겠다"며 "내가 총살당하는 한이 있어도 싹 쓸어버리겠다"고 말했다고 공소장에 적시됐다. 특검은 이 발언을 사실상 비상계엄 카드에 대한 최초 공개적 언급으로 해석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점한 여소야대 속에서 내각 구성에만 약 6개월을 소요했다. 또 국정과제 추진을 위한 정부 입법안 가운데 2023년 5월 기준 약 35%만 국회를 통과하는 등, 국정 동력이 제약된 상황이었다고 특검은 설명했다. 이 같은 구조적 제약이 청와대 내부에서 비상수단 논의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후 2023년 8월 순직 해병 사건 수사 과정에서 외압 의혹이 제기되고, 같은 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하는 등 정국은 더욱 경색됐다. 특검은 이 시점을 계엄 준비 본격화의 전조로 본다.
특검팀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 내용을 핵심 근거로 삼았다. 수첩 등에 드러난 일정을 종합하면 2023년 10월 군 장성 인사 시기부터 계엄 관련 준비가 체계적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등 주요 군 수뇌부 인사가 이 무렵 집중 배치된 점도 공소장에 반영됐다.
2024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과반을 확보하며 여소야대 구도는 오히려 강화됐다. 특검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이 시기 비상대권을 반복 거론했고, 계엄 선포를 전제로 한 실무 준비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고 본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이자 전 국가안보실장,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식사를 하며 비상수단 사용을 언급했다. 그는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며 "군이 나서야 하지 않느냐, 군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특검은 파악했다.
특검팀은 이 무렵 김용현 전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점령하고, 사전에 수거 대상으로 분류한 정치인과 주요 인사를 체포·구금하는 방안을 비롯해 처리 방안 전반을 검토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계엄 선포 이후 국회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구상이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같은 해 5∼6월에도 안가에서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과 저녁 식사 도중 "비상대권이나 비상조치가 아니면 나라를 정상화할 방법이 없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소야대 정국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비상수단 필요성을 조율하는 발언으로 특검은 해석했다.
대외 일정에서도 강경한 표현이 이어졌다. 2024년 7월 미국 하와이 방문 당시 호텔에서 김 전 장관 등과 만나 한 인사를 두고 "한동훈은 빨갱이다"라고 지칭한 뒤 "군이 참여해야 하는데 아니냐"는 취지로 말했다는 내용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특검은 이 발언이 안보와 이념 문제를 계엄 논의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고 보고 있다.
같은 해 8월 초순경에는 김 전 장관과 여 전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정치인과 민주노총 관련자를 언급하며 "현재 사법 체계하에서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므로 비상조치권을 사용해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드러났다. 특검은 비상조치권 행사 대상에 야권 정치인과 노동계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점을 중대하게 봤다.
이 무렵 인사 조정도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하고,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후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시부터 이 인사를 두고 비상계엄 준비 의혹을 제기하며 청와대와 군의 밀접한 연계를 문제 삼은 바 있다.
특검이 파악한 계엄 준비는 2024년 11월 들어 한층 구체화됐다. 윤 전 대통령은 11월 9일께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비상계엄을 다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11월 24일에는 김 전 장관에게 "나라가 이래서 되겠느냐"며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특검은 공소장에 썼다. 특검은 국회에 대한 강한 불만과 정국 위기 인식이 계엄 카드 채택을 압박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국은 이후 빠르게 악화됐다. 더불어민주당이 11월 28일 검사 탄핵소추안 추진을 결정하고, 이튿날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자, 윤 전 대통령은 11월 29일 저녁 김 전 장관에게 비상계엄 선포문 작성 등 준비를 지시한 것으로 특검은 판단했다. 이틀 뒤인 11월 30일 밤 관저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김 전 장관, 여 전 사령관에게 "헌법상 비상조치권, 비상대권을 써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진술도 공소장에 담겼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12월 3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내세워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특검은 이 선포가 단기간 돌발적 결단이 아니라 2022년 말부터 이어진 일련의 비상대권 구상과 군 인사, 국회와의 갈등 누적 끝에 등장한 최종 조치였다고 결론내렸다.
정치권에선 특검 공소장 내용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은 그간 제기해 온 계엄 모의 의혹이 검찰 수사와 특검 공소로 구체화됐다며 공세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반면 국민의힘과 윤 전 대통령 측은 국가 위기 상황에 대비한 정상적 국정 운영과 안보 점검을 내란·외환 시도로 왜곡하고 있다며 강력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는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수첩의 신빙성, 당시 군·정보기관 지휘라인의 인식, 실제 실행계획의 구체성 등이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군과 경찰의 국회 봉쇄·점령 계획이 어느 수준까지 논의됐는지, 야권과 시민사회에 대한 강경 조치가 어느 정도로 준비됐는지에 따라 내란·외환 혐의의 입증 강도도 달라질 수 있다.
정치권은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 재판을 둘러싸고 장기 대치를 예고하고 있다. 국회는 향후 계엄 발동 요건과 통제 장치를 강화하는 입법 논의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고, 정부와 여당은 안보 공백을 우려하며 제도 개편 속도 조절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